전대규 변호사(전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전대규 변호사 제공.
대표적인 것이 도산 절차를 밟게 될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정하는 특약, 도산해제조항이다. 계약 상대방이 지급정지나 파산, 회생절차개시처럼 신용상태가 악화할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최근 한 의뢰인으로부터 비슷한 이유로 연락을 받은 일이 있다. 사정을 들어보니 회생절차개시 신청을 한 다음날 운용자금을 빌린 거래은행으로부터 대출금을 상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돈을 빌려준 금융사의 입장은 수긍이 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금융사가 주장하는 기한이익상실 조항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도산해제조항 문제에서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회생절차개시 신청을 했다는 것만으로 기한이익이 상실된 것으로 보면 회생절차개시 신청이 이뤄지는 순간 채권·채무자가 서로 받을 돈과 갚을 돈을 계산해서 최종적으로 주고 받을 돈을 정산하는 상계적상이 창출된다. 이는 원만한 회생절차 진행을 위해 상계권 행사 시기를 제한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의 취지에 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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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한이익이 상실될 경우 담보권자가 담보권을 실행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또한 담보권 실행을 중지·금지하는 채무자회생법과 충돌한다.
채무자가 영업을 계속해 채권자에게 빚을 갚을 의도로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했는데 신청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채무자의 의도와 어긋난다는 점에서도 회생제도의 목적에 반한다. 일본에서도 다수의 학자가 회사갱생절차개시 신청만으로 기한이익을 상실한다는 기한이익상실 조항은 효력이 없다고 본다.
채무자회생법의 규정 취지나 회생절차의 목적, 외국의 상황 등을 고려하면 회생절차개시 신청만으로 기한이익이 상실된다는 조항은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 금융사가 회생절차개시 신청만으로 기한이익을 상실한다는 조항을 두는 것은 기업이나 개인이 회생제도를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조기에 회생절차에 진입해 회생의 성공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세계적인 흐름에도 배치된다.
금융사에서는 법원이 해당 조항이 무효라는 것을 선언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해당 규정을 삭제하거나 개정할 필요가 있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워지는 시기에는 기업이나 개인의 숨통을 적극적으로 틔워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