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출신 애널리스트 "K 반도체의 미래, 일본에서 배워야"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2023.06.28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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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K반도체의 미래를 묻다]⑧ 도현우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 기업분석부 테크팀장

편집자주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의 시대다. 미국,일본, 대만, 유럽 등 각국이 각축을 벌인다. 반도체는 지난해 한국 전체 수출액의 약 20%(1292억 달러)를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다. 한국이 반도체 경쟁력을 잃는 순간 국가적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 20년 동안 한국을 먹여살린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래 비전을 모색한다.

'일본의 몰락과 부활'

도현우 NH투자증권 (12,490원 ▲90 +0.73%) 리서치본부 기업분석부 테크팀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일본의 부활'을 손꼽았다. 도 팀장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전자전산학과를 졸업하고 SK하이닉스 D램 개발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반도체 전문가다.

도 팀장이 일본의 부활을 가장 위협적인 이유로 지목한 이유는 그 뒤에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달 반도체 분야 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과 인력 양성을 위한 공동 로드맵'을 짜기로 했다. 1980년대 반덤핑 등 무역규제로 결별했던 미국과 일본이 다시 손을 잡은 모습이다. 명분은 반도체 인재 육성이지만,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활이 궁극적 지향점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이 한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미국이 다시 일본으로 반도체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등 다른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게 될 경우 한국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도 팀장은 "(미국이) 반도체 생산공장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꾸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는데, 다시 바꿀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이외에 대만·인도 등도 한국을 대체할 주요 국가로 주목받는다.

과거 일본의 몰락은 반도체 산업에 있어 정책 결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1970년대 첨단산업에서 미래 가능성을 엿본 일본이 뛰어든 게 반도체 산업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다. 1990년 6개 일본 기업이 D램 시장의 80%를 차지했다. 상위 10대 기업 중 미국 기업은 인텔과 TI, 모토로라 등 3개 기업뿐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사진=NH투자증권도현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사진=NH투자증권


반도체 산업이 무너지면서 일본은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경제 전반이 악화하는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을 보냈다. 도 팀장은 과거 일본 반도체 산업이 퇴조한 이유에 대해 "기술적인 문제보다, 외교 정책의 문제가 컸다"고 분석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 과도한 시장점유율 확대와 저가공세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일본은 관세를 낮추고 자금·인력을 지원하는 등 공격적인 지원정책을 펼쳤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하지만 문제는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주요 반도체 생산공장을 중국에 두고 있는데, 미국은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에 따른 반도체 부족물량을 한국 기업들이 채워주지 말라고 요청할 정도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도 팀장은 외교적으론 중립적 입장을 취하면서 실익을 취하는 소위 '슈퍼을' 전략을 취하면서 초격차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한국은 운명적으로 미국, 중국과 사이좋게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반도체 수요 축소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제조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AI(인공지능)과 운송용(모빌리티) 등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는 얘기다. 도 팀장은 반도체 산업 위기상황은 올해 하반기 정리될 것으로 보고 "엄밀히 말하면 (단기적으로)위기라고 보긴 어려운 시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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