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고객사의 호실적에도 TSMC의 실적은 초라하다. 올해 1분기 순이익은 약 8조 9700억원으로 직전 분기(12조 8000억원)보다 30% 줄었다. 지난 1월 적은 조업일수에도 전년 동기보다 16.2% 성장하는 등 실적이 개선됐던 것과 사뭇 다르다. 이날 엔비디아 수혜 기대감으로 주가가 12% 가까이 올랐지만, 웬델 황 CFO가 2분기 실적 악화를 예상할 정도로 여전히 전망이 어둡다.
가동률 하락은 주요 고객사의 주문량이 줄고 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이다. TSMC의 최대 고객사인 애플은 최근 미국 업체 브로드컴과 수조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자국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TSMC의 한 협력사 관계자는 "5나노, 16나노 공정 가동률도 80%대로 떨어졌다는 말도 나온다"라며 "(엔비디아 실적 개선에도) 물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지정학적 위기도 매출 하락에 영향을 줬다. 미중관계 악화로 TSMC의 중국향(向) 매출이 지속 감소했다. 중국 고객사들은 TSMC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TSMC는 미국의 요구대로 하이시반도체 등 중국 팹리스 기업의 대량 주문을 거절해 왔는데, 이같은 흐름이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무리한 자본 지출도 부담이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4조 6000억원, 일본 구마모토에 9조 4000억원을 투입해 첨단 공정 반도체 팹(공장)을 건설 중이다. 여기에 유럽연합(EU)과 추가 공장 건설까지 논의중이다. 통상 해외 생산시설은 대만 내 공장보다 최소 5배 이상의 금액이 투입되는 것으로 본다. 가오슝의 신규 공장도 지연되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투자 지출을 늘렸다는 것이다.
대만 업계 관계자는 "2021년부터 지속 상승해 오던 TSMC의 제품 가격이 이번 분기 처음으로 하락했다"라며 "불황이 심각해도 설비 투자를 줄이지 않았던 TSMC가 1분기 투자를 96%나 감축한 것은 시장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