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스러움'이 아쉬운 두 번째 전주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3.05.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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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YPC, 유니버설뮤직사진제공=YPC, 유니버설뮤직


조용필 20집의 두 번째 전주(Prelude)에 대한 반응을 한마디로 줄이면 '회춘'이다. 이런 반응을 노린 전략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어쨌거나 지금 분위기는 그렇다. 그 분위기가 워낙 집단적이고 일방적이어서 때론 앨범 타이틀 'Road to 20(20집을 향한 길)'이 아예 '20대로 가는 길'로 읽힐 정도다. 하지만 조용필이 꼭 젊어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신곡들이 갖춘 장르(신스팝과 하우스)들도 따지고 보면 수십 년 전 유행한 장르들로, 딱히 새로운 게 아니다. 그저 조용필이 19집(예컨대 '그리운 것은') 이전까지 잘 건드리지 않았던 것일 뿐. 이제 와 건드리니 새롭고 젊어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조용필은 왜 젊은 듯한, 또는 젊어 보이고 싶어 하는 듯한 음악을 계속 가지고 오는 걸까.

이런 질문이 나올 걸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신곡 'Feeling Of You'에선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과 키보디스트 최태완 두 멤버가 연주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며 아등바등 살지 말고 주어진 지금을 소중히, 자신을 느끼며 살자는 긍정의 메시지를 담은 이 곡은 스웨덴 작곡가 디드릭 토트(Didrik Thott)와 니클라스 킹스(Niclas Kings)가 조용필과 함께 만들었다. 10년 전 'Hello' 때와 같은 송캠프 방식이다. 특히 디드릭 토트는 태민, 있지(ITZY), 보아, NCT127, 레드 벨벳 등과 작업한 인물로 그의 건강한 텍스처는 클럽 음악에 강한 니클라스의 그루브를 만나 조용필의 신곡이 케이팝을 담보한 클럽으로 무난히 갈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신곡 '라'는 앞서 말한 하우스 계열의 곡으로, 신스 베이스가 내뿜는 탱탱한 바이브가 'Feeling Of You'보다 클럽에 더 어울리는 모양새다. 이 곡은 일본 걸그룹 맥스(MAX)와 작업한 아일랜드 송라이터 마이클 제임스 다운(Michael James Down), 영국 작곡가 겸 프로듀서 윌 테일러(Will Taylor)가 프리모즈 포글러젠(Primoz Poglajen)이라는 인물과 함께 세운 영국의 작곡 및 음악 프로덕션 회사 '하이키 뮤직(Highkey Music)'이 제공한 작품이다. 하이키 뮤직은 세계 유명 아티스트와 신예 독립 아티스트를 위한 모던팝의 작곡 및 프로듀싱을 전문으로 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는데 조용필은 여기서 전자(유명 아티스트)에 속하겠다.

사진제공=YPC, 유니버설뮤직사진제공=YPC, 유니버설뮤직


정리를 좀 해보자. 조용필은 지난해 11월에 20집 첫 싱글로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을 공개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말 'Feeling Of You'와 '라'를 추가로 내놓으며 신보의 윤곽을 구체화시켰다. 가사는 모두 김이나가 썼고 조용필은 한 곡의 작곡과 한 곡의 편곡에만 참여, 나머지는 노래에만 전념했다. 프로듀서는 총괄(Executive Producer)로서 이름을 올려 모든 작업을 자신이 통제했다는 걸 암시한다. 좀 낯설어도 이건 어디까지나 조용필의 음악, 앨범이라는 얘기일 거다.

하지만 나는 다시 '왜 조용필이 젊어져야 하는가'를 묻고 싶다. 설사 그렇다 해도 그 방향이 꼭 트렌디 장르를 향해야만 가능한 것인가를 나는 겹으로 묻는다. 그가 과거 여러 장르들을 건드렸던 건 역설적으로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함이었기에 더 그렇다. 결국 그것은 성공했고 그것이 남녀노소 대중을 열광케 했다. 조용필 음악의 힘은 실험과 도전에 있는 게 아니다. 스타일과 장르는 대중에게 가기 위한 길이었지, 그 자체가 목적지는 아니었다. 그가 장수했던 건 의외로 그의 음악에 내재한 보편성 때문이다. 슬픔을 슬픔으로 씻어내고 고독을 고독으로 밀어내던 그 서럽던 공감 능력, 치유력이 바로 조용필 음악의 가치요 인기 비결이었다. 그리고 그 음악의 기준은 언제나 조용필이라는 사람이었다.

물론 13, 16집 등 그는 일찌감치 해외 음악가, 스태프들과 작업한 적이 있기에 송캠프 같은 요즘 형식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아니다. 나는 지금 작곡가 크레디트 제일 뒤에 있는 조용필이라는 이름이 창작의 주체라기보단 명분이나 당위로서 더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조용필만의 색이 바랠 여지가 많아진다. 그러면 좀 어떠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린 조용필의 음악을 듣고 있다. 아이돌 그룹의 데뷔 싱글이 아니다. 적어도 데뷔 55년 차 뮤지션의 음악이라면 자신만의 시그니처라는 게 얕게나마 감지되게 마련인데 이번 신곡들에선 그게 많이 아쉽다는 게 내 질문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건 딱히 장르 문제도 아니다. 데이비드 보위가 포크를 하든 재즈를 하든, 앰비언트에 파묻히든 그건 언제나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이었다는 사실, 나는 지금 그 지점을 말하고 있다.


사진제공=YPC, 유니버설뮤직사진제공=YPC, 유니버설뮤직
80세의 폴 맥카트니는 햇수로 3년 전 자신의 18번째 솔로 앨범에 수록된 11곡을 혼자 다 썼다. 꼭 그러라는 게 아니라 조용필은 어디까지나 '싱어송라이터'이기에 한 번 짚고 넘어가자는 차원에서 던지는 얘기다. 적어도 19집은 이 정도로 위화감을 주진 않았다. 'Bounce'는 15집의 '도시를 떠나서' 느낌을 이어간 것이었고, '걷고 싶다'와 '말해볼까' 같은 곡들엔 기존 팬들도 함께 잠길 만한 요소가 충분히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의 음악에 조용필스러움, 조용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있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스타로서 의무라기보단 아티스트로서 책임에 가까운 것일 게다. '바람의 노래' 같은 곡을 듣고 있으면 내 그런 생각은 더욱 견고해진다.

따지고 보면 트렌드란 개성과 대척인 역설적 개념이다. 남이 하는 걸 하고 남과 비슷해야 돋보인다. 따르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그것이 만드는 이에겐 은근한 강박이 된다. 지금 조용필은 트렌드와 거듭남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가 벌써부터 11년 전 모 걸그룹의 곡과 유사성을 비교당하고 있는 건 무얼 말해주는가. 기존 것을 지키는 일이 마냥 멋스러운 게 아니듯, 그걸 벗어나는 것에 집착하는 일도 그렇지 않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AC/DC 같은 고집을, 유투나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사회 참여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조용필 하면 떠오르는 소소한 것들, 이를테면 묵직한 사색('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고독('바람의 노래'), 아픔('허공'), 잠시 숨 돌리게 하는 해방감('여행을 떠나요') 같은 것이다. 그나마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엔 그런 게 부분이나마 있었는데 이번엔 아예 본질을 놓고 스타일만 좇은 듯해 아쉽다. 그만이 할 수 있고 들려줄 수 있는 영역을, 가령 작사가 최은정/박주연과 함께 열어젖힌 12집의 감동적인 도입부('추억 속의 재회'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기대하는 건 이젠 무리인 것인지. 적어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걸 걱정하는 일은 시대를 지배했던 사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조용필이 시대를 앞서고 세련됐던 건 43년 전 1집과 32년 전 13집 때였다. 그의 커리어에서 '단발머리'의 반주와 '한오백년'의 가창보다 더 파격적이었던 적이, '꿈'보다 더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준 적이 어디 있었나. 조용필의 전성기를 빛낸 양인자라는 이름이 아직 보이던 18집 이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조용필이 발표했고 발표할 앨범은 단 두 장. 모르겠다. 그의 '젊어진' 음악에 환호하는 건 각자의 자유이지만, 적어도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그의 음악이 '세대를 어울렀느냐'면 글쎄, 나는 회의적이다. 잊으면 안 된다. 장르와 세대를 어울러 슈퍼스타가 된 조용필이다. 'Feel Of You'와 '라' 같은 음악을 본인이 하고 싶었을 수는 있지만 그걸 반드시 조용필이 할 필요는 없었다. 트로트와 국악을 등지는 게 능사는 아니다. 지금 조용필이 챙겨야 할 건 콜드플레이 같은 신스/스페이스 팝과 아쿠아(Aqua)풍 유로 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다른 쪽엔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와 '고추잠자리', '친구여'와 '어제 오늘 그리고'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주자로서도 좋지만 '남겨진 자의 고독'을 쓴 작곡가 최태완을 더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20집의 나머지 곡들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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