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뒤집어놓은 21살 일병, 어떻게 기밀 접근권이… [우보세]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23.04.19 04:05
글자크기
기밀 군사 정보 기록을 온라인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미 공군 방위군 소속 더글러스 잭 테세이라가 14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연방 판사에게 첫 출두해 법정 스케치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기밀 군사 정보 기록을 온라인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미 공군 방위군 소속 더글러스 잭 테세이라가 14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연방 판사에게 첫 출두해 법정 스케치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미국 국방 기밀 문건의 유출 범인(아직은 피의자)은 불과 21살의 미 주방위군 소속 일병이었다. 당사자인 미국도 당황스럽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제사회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다. 한국 등 주요 동맹국에 대한 도·감청 정황은 물론이고 대반격을 앞둔 우크라이나의 전략적인 약점을 드러내 상당수 국가를 들쑤셔놓은 희대의 정보 유출이 20대 현역병의 치기에서 비롯됐다니. 허탈하면서도 간담이 서늘하다.

디스코드에서 'OD'란 아이디로 소그룹 대화방에 기밀문서를 공개한 청년 잭 테세이라는 지난 14일(현지시간) FBI에 체포됐다. 기밀문서 유출이 언론에 보도된 후 8일 만이다. FBI는 체포 후 18시간 만에 테세이라를 법정에 세웠다. 이제 갓 21살 청년에게 '간첩혐의'가 적용됐다. 비밀문서 취급 각서를 쓰고 국가보안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이를 유출해 안보를 해쳤다는 이유다.



미국 같은 글로벌 초강대국에 기밀 자료 유출은 재앙이다. 더구나 미국은 잭 테세이라 전에도 에드워드 스노든, 첼시 매닝 사건 등 지난 13년 동안 세 번의 정보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테세이라 사건의 경우 더 많은 분량의 문서 유출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NYT를 비롯한 외신들은 최초의 문서유출이 지난 1월이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국방부가 사태를 인지(4월 6일)까지 더 많은 정보를 유출할 시간이 충분했다.

테세이라 사건에서 최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수품 공급 속도,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미국 무기의 효율성, 방공 시스템의 상태 등 유출된 정보가 러시아의 자체 작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가 내부정보 공유와 통신을 단속하면 전쟁 기간 미국과 우크라이나에 유리했던 정보 원천이 제거되거나 무너질 수도 있다.



기밀문서 온라인 유출에 연루된 혐의로 FBI에 체포된 21세 미 공군 방위군 소속 잭 더글러스 테세이라가 미확인 장소에서 셀카를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로이터기밀문서 온라인 유출에 연루된 혐의로 FBI에 체포된 21세 미 공군 방위군 소속 잭 더글러스 테세이라가 미확인 장소에서 셀카를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로이터
동맹국과의 관계에도 부정적이다. 2013년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이후 미국의 무차별적 정보 수집은 사실 새롭지도 않다. 하지만 이번에 유출된 문서에 드러난 한국, 이스라엘, 헝가리 정부의 사적인 대화는 미국의 스파이 활동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뤄졌는지 보여준다. 동맹국들이 이를 모르지 않았더라도 표면화되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도·감청 의혹이 보도된 직후 우리 정부는 "미국의 행동이라고 드러난 게 없다", "공개된 자료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한미관계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미국 역시 "한국에 대한 헌신은 철통같다"며 오는 26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잡음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질까.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이버안보 협력에 관한 별도 문건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과거 한미동맹 70년간 안보 협력이 한반도라는 물리적 공간에 국한됐다면 앞으로는 우주와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넓히겠다는 취지다. 북한이 금융기관 해킹 등 사이버상으로 국내 주요기관을 공격하고 정권 유지를 위한 자금원으로 암호화폐를 사용하면서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이 커진 영향이다.


하지만 '세계의 경찰' 미국 내에서 샌 바가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어떻게 2019년에 입대한 하급 주방위군이 최고위급 관리를 위해 준비된 브리핑(그것도 1급 기밀이 담긴)에 접근할 수 있었을까. 9.11 테러 이후 보안 정보가 각 부서 내에 '구획화'돼 있다는 지적이 인 뒤 '공유'가 확산된 탓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이번엔 그때와 반대로 정보 공유가 지나치게 방만하게 이뤄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