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로맨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한 외국인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책의 형식을 취하는 시작부터 이 영화가 얼마나 선을 세게 넘을지 짐작하게 만든다. CF 한 편으로 스타 반열에 올라 7년간 시대를 풍미했던 황여래(이하늬)가 ‘발연기’로 국민적 조롱거리가 된 후 연예계 생활에 염증을 내며 남태평양의 ‘꽐라’ 섬으로 떠났다가 부동산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다는 것까지는 동화 스토리 같다. 그러나 알고 보니 조나단 나(Johnathan Na), 그러니까 줄여서 존 나(John Na)는 동화 속 왕자님이 아니라 자기애 과잉에 소시오패스의 면모를 지닌 악당. 항상 49kg의 몸무게와 환한 미소를 강요하는 조나단 때문에 여래는 7년째 그의 인형처럼 살아가는 중이다.
'킬링로맨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전래동화 같은 액자식 구성, 웨스 앤더슨이 떠오르는 강렬한 미장센, 주성치나 발리우드 영화가 연상되는 뜬금없는 컬트적 포인트 등 무엇 하나 과하지 않은 것이 없는 ‘킬링 로맨스’. 문제는 선을 세게 넘고 내달리는 영화의 톤 앤 매너를 관객이 ‘얼마나 따라잡을 것인가’이다. ‘킬링 로맨스’는 극한의 코미디와 스릴러, 뮤지컬 등 각종 장르가 겹친 ‘혼종’인데, 오죽하면 주연 배우들마저 ‘먹다 보면 중독되는 민트 초코 같은 맛’(이하늬), ‘대본을 처음 볼 때 요상했다. 초반 20분까지는 이거 뭐지 하며 의아할 것 같다’(이선균)고 표현할 정도.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이원석 감독의 목표대로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싶은 독특하고 기상천외한 장면들이 107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기에, 어떻게 보면 B급 감성 숏폼을 107분 내내 보는 느낌도 든다. 마음의 문을 열고 본다면 영화 속 신박하게 미친 자들의 한바탕 난리블루스에 폭소하게 되지만, 기존 영화를 보듯 내러티브와 핍진성을 따진다면 거대한 실소의 현장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킬링로맨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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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직진하던 영화가 중반 이후 살짝 속도감을 잃고 느슨하게 전개되는 지점도 있고,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작스럽고 간편하게 작중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플롯 장치)의 존재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가스라이팅을 비롯한 가정 폭력, 남편의 살해 시도 등 음습한 소재 또한 호불호의 척도가 될 수 있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본다면 이 영화는 적잖이 유쾌하다. ‘H.O.T.’의 ‘행복’과 비의 ‘레이니즘’ 등 그 시절 유행했던 대중가요를 나직이 흥얼거리며 발을 구르게 되고, 내 안의 ‘B급 감성’이 어디까지인지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된다.
처음에 말했듯, 주말 영화 티켓이 1만5000원인 시대에 ‘킬링 로맨스’를 극장에서 보라고 추천해야 할지는 난감하다. 모든 관객이 ‘민초파’는 아닐 테니까. 다만, OTT 등 작은 화면으로는 ‘킬링 로맨스’가 구현하는 ‘괴랄한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울 거란 점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잇츠 귯!” 도전정신 강한 관객이라면 이 정도 일탈은 나쁘지 않을 듯싶다.
4월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쿠키영상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