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서 '최초' 역사 쓰는 현대차그룹...日에 전기차·플랜트 도전장

머니투데이 자카르타·발릭파판(인도네시아)=이정혁 기자 2023.03.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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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부 장관, 인니 수도 이전 '원팀 코리아' 수주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현대차 공장 본관에 전시된 코나. 보닛엔 조코위 대통령의 친필 사인/사진=이정혁 기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현대차 공장 본관에 전시된 코나. 보닛엔 조코위 대통령의 친필 사인/사진=이정혁 기자


세계 4위(약 2억8000만명)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에서 일본 기업은 자동차와 플랜트 등 주요 장치 산업 분야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한다. 도요타와 혼다 등 완성차 제조사의 현지 시장 점유율은 70% 이상이며 플랜트 사업 역시 30년 가까이 수주를 독점하고 있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시장이지만 최근 현대자동차 그룹이 이런 판세를 흔들기 시작했다. 인니 최초로 전기차 공장을 세운데 이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제치고 대형 정유 플랜트 사업도 따내는 등 일본 독주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ASEAN(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현대차와 현대엔지니어링의 인도네시아 현장을 머니투데이가 둘러봤다.

현대차 인니서 전기차 최초 생산...토요타-혼다 하이브리드에 아이오닉5로 도전
인니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2시간 정도 달리면 나오는 브카시. 이곳에서도 델타마스 산업단지는 토요타와 혼다, 현대차 등의 생산공장이 몰려 있어 현지에서 완성차 업체의 총본산으로 불린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찾은 현대차 공장은 축구장 약 110여 개 부지(77만7000㎡)에 차제, 의장, 프레스 등의 사이클을 갖춘 명실상부한 아세안 공략의 전초기지다. 인도 등 다른 글로벌 생산공장과 차이점이 있다면 내연기관보다 아이오닉5 등 전기차를 주력으로 삼는 것이다.

메인동에 들어서면 전시된 하얀색 코나 전기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보닛에는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11월 현대차 울산공장을 찾았을 때 남긴 서명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현대차 공장을 자국에 유치하려는 조코위 대통령의 '러브콜'로 읽혔다.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한 현대차는 2019년부터 인도네시아 최초로 전기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21년 0.4%였던 현지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3%로 성장하는 등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영택 아세안권역본부 부사장은 "지난해 인니에서 판매한 전기차는 1900대, 올해는 8000명이 대기하고 있다"며 "자재만 공급이 되면 1만 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프레스 라인 안으로 이동하자 한국 못지않은 최신 설비들이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돌아갔다. 차체 공장에서는 노란색 로봇 팔 수십 여대가 정해진 계산식대로 일사분란하게 불꽃을 튀기며 용접작업을 하고 있었다.

로봇이 손길이 닿지 않는 일부 공정(어셈블리)의 경우 현지 직원이 직접 콘솔박스와 트렁크 스포일러를 손으로 꼼꼼하게 조립했다. 의장 공정 과정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운전석에 탑승해 핸들을 좌우로 돌리며 실내 유격 여부 등 최종 마감 작업에 손을 보태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기차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 수출길에 오른다. 당장은 일본산 하이브리드 차량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지만 인도네시아를 필두로 동남아 상당수가 지반침하 문제와 인구 밀집 등 환경 난제와 맞닥뜨리고 있는 만큼 전기차 대중화는 사실상 시간 문제라는 게 현대차의 판단이다.

이영택 부사장은 "지난해 발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당시 G80과 아이오닉5가 각국 의전 행렬 가장 앞에 배치된 반면 렉서스 UX300은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며 "우리가 동남아 시장 진출은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전기차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현대차 인니공장에서 의장 공정 작업을 마친 모습/사진=이정혁 기자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현대차 인니공장에서 의장 공정 작업을 마친 모습/사진=이정혁 기자
현대엔지니어링, 일본 30년 독점한 플랜트 시장서 첫 수주...인니 정유분야 최대 국책사업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 전경/사진제공=현대엔지니어링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 전경/사진제공=현대엔지니어링
"일본이 20~30년 동안 독점해온 인도네시아 플랜트 사업을 우리가 최초로, 그것도 최대 규모의 정유공장을 수주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18일(현지시간) 인니 신수도 이전지인 발릭파판의 정유공장 건설 현장에서 만난 한창구 현대엔지니어링 프로젝트 디렉터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한국이 플랜트 강국임에도 일본에 번번이 밀려 고배를 마시다가 이번에 인도네시아 정유 분야 최대 국가전략사업이자 국영정유회사인 페르타미나 발주 공사에 처음 진입했기 때문이다.

전체 사업 계약금액 5조8000억원 중 현대엔지니어링은 70%인 4조1000억원을 따냈다. 네덜란드가 인니를 식민 지배할 때 세운 원유 정제설비를 고도화시키고 기존 공장의 개보수까지 책임지는 초고난도 사업이다.

이날 현장에 들어서자 수십여 대의 중장비가 쉴새 없이 달리며 내뿜는 모랫바람이 '조' 단위의 대규모 공사임을 짐작하게 했다. 여기저기 보이는 건물 10층 높이의 원형탱크는 보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현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증류탑 건설 현장이었다. 지면에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수 ㎞에 달하는 정유 배관의 종착지로 "참기름(원유)을 짜고 나온 기름을 또 짜는(경유, 휘발유, 등유, 벙커C유 등) 잔인한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현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난달 기준 공정률은 약 70%. 2025년 9월 완공 이후에는 일 26만 배럴에서 36만 배럴에 규모의 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는 세계 20위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보면 책임감이 남다른 사업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할 경우 일본판인 인도네시아 플랜트 사업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창구 디렉터는 "'발릭파판 정유공장 프로젝트'는 한국과 인니의 플랜트 분야 최대 협력 사업"이라면서 "국내 업체 134개가 참여하고 시공업체도 16개 진출하는 등 국내 경제에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에서 증류탑을 설치하는 모습/사진제공=현대엔지니어링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에서 증류탑을 설치하는 모습/사진제공=현대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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