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최초 여성변호사의 수모 '리디아 포에트의 법'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3.03.15 10:07
글자크기
'리디아 포에트의 법', 사진제공=넷플릭스'리디아 포에트의 법', 사진제공=넷플릭스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초란 말의 다른 의미는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라 할 수 있다. 거저 얻어지는 처음은 없다. 때문에 '최초'란 단어는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일례로 K팝 역사에 센세이션한 바람을 일으킨 방탄소년단은 디스코그래피로 여러 최초 기록을 썼다. 한국 드라마 글로벌 신드롬의 주역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도 에미상 수상과 더불어 한국 드라마 관련 여러 최초의 기록을 써내렸다. 많은 이들은 이 '최초'의 업적을 지켜보며 열광하고 환호한다. 최초의 순간을 일구기 위해 흘렸을 땀과 노력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지금 소개하려는 드라마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지닌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탈리아 최초 여성 변호사 리디아 포에트의 일대기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 '리디아 포에트의 법'이다. 리디아 포에트(1855-1949)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여성 인권 향상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최초의 길을 걷는 모두가 그렇듯, 드라마 속 리디아(마틸다 데 안젤리스)도 녹록지 않은 과정을 겪는다. 기사 제목을 '수모'라 붙인 까닭도 그를 향한 노골적인 부정의 시선이 끊임없이 담기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마저 리디아가 자신을 변호사라 소개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한다.



'리디아 포에트의 법', 사진제공=넷플릭스'리디아 포에트의 법', 사진제공=넷플릭스
리디아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을 공부해 법학대학을 나온다. 누구에게도 응원 받지 못한 최초의 걸음은 리디아 혼자 감당하며 나아간다. 부모에게 등떠밀려 집을 나오고, 집세에 전전긍긍하는 고난과 맞닥뜨린다. 수모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법원은 법학대학까지 나온 리디아의 변호사협회 가입을 위법으로 판결해 변호사 자격증을 박탈한다. 판결문은 오늘날 시대상으론 상당히 성차별적이고 모욕적이다.



"여성이 법정에서 온순한 성별이 지켜야 할 도를 넘어 논쟁하는 것은 실로 볼썽사납고 우려스러운 광경이다. 법관의 가운이 여성의 유행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기이하고 별난 의상 아래 가려진다면 선고의 신뢰도가 흔들릴 위험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본 법정은 여성에게 타고난 성정에 적합하지 않은 임무를 수행하게 하거나 여성에게 보다 적합한 다른 소임 특히 가정 내 역할 수행을 방해하는 업무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다."

리디아는 분노하며 울부짖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상고를 준비하고 이와 동시에 변호사로 활동하는 친오빠 엔리코 포에트(피에르 루이지 파신)의 수행인이 되어 보이지 않는 손으로 활약한다. 법정에 설 자격이 박탈됐기에 리디아의 변호인으로서 활약은 주로 외부에서 이뤄진다. 기자, 매춘부로 잠행은 기본이고 스스로를 미끼 삼아 진범을 잡아내기도 한다. 몸으로 뛰는 리디아의 모습은 화술이 주요한 법정극이 아닌 진범 찾기에 주력한 '에놀라 홈즈'와 폼이 비슷하다.

'리디아 포에트의 법', 사진제공=넷플릭스'리디아 포에트의 법', 사진제공=넷플릭스

새언니 동생인 신문사 기자 야코포(에두아르도 스카르페타)와 로맨스도 있는데, 야코포가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한 비밀을 들키자 "보호하려고 한 거짓말"이라는 말에 "보호 같은 거 필요없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작품에서 리디아가 보여주는 모든 태도에 대표되는 말이다. 보호가 아닌 응원이 필요한 여자. 작은 조력은 받지만 전적인 도움은 받지 않는 여자다.

여러 활약에도 리디아는 끝끝내 변호사 자격증을 되찾지 못한다. 가족에게 짤막한 안부를 적은 편지 한장만을 남겨둔 채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뉴욕행 티켓을 들고 집밖을 몰래 나선다. 쓸쓸한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리디아 앞에 수많은 시민들이 등장해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군중의 끝자락엔 오빠 엔리코가 서있다. 리디아의 변호사 활동을 반대했던 엔리코는 마지막에서야 진심어린 포옹으로 있는 그대로의 리디아를 포용한다. 이탈리아를 떠나는 리디아의 마지막엔 그간의 수모를 씻어내는 따뜻한 시선들로 훈훈한 피날레를 장식한다.



6부작의 짧은 시리즈는 매회 다른 에피소드로 다양한 사건사고를 다룬다. 19세 미만 관람불가 작품인 만큼 대다수가 잔혹한 살인사건이다. 잔인하게 훼손된 시체나 적나라한 정사신도 자주 등장한다. 자극적인 장면은 적소에 등장해 몰입감을 높인다. '에놀라 홈즈'의 19금 버전이라는 소개가 적합해 보인다.

'리디아 포에트의 법', 사진제공=넷플릭스'리디아 포에트의 법', 사진제공=넷플릭스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 리디아 포에트 역의 마틸다 데 안젤리스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기품있는 외양과 단단한 눈빛, 곧은 어깨가 '이탈리아 최초 여성변호사' 리디아 포에트의 당당함을 수반한다. 미국판 '부부의 세계'라 불리는 HBO 시리즈 '언두잉'에서 니콜 키드먼과 휴 그랜트와 함께 매혹적인 연기를 보여준 바로 그 배우다. 할리우드에서 각광 받으며 심상치 않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리디아 포에트의 법'으로 더 크게 도약하겠다 싶다.



참고로 다른 이야기이지만 '리디아 포에트의 법'을 보다 보면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로 자연스레 호기심이 전염된다.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는 1954년 탄생했다. 이름은 이태영. 그 역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유부녀의 몸으로 30대 늦깎이 법학도가 된 이태영 변호사는 1946년 여성 최초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해 또 여성 최초로 1952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본래 판사를 지내려고 했으나 리디아와 마찬가지로 시대상에 떠밀려 1954년 변호사 임용에 그쳤다. 이만한 사연이면 한국판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