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의 32.6조 적자폭탄, 직원들이 갚는다면[우보세]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2023.03.09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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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26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전력 서울본부 현판과 오피스텔 건물 내 전기 계량기의 모습.  /사진=뉴스126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전력 서울본부 현판과 오피스텔 건물 내 전기 계량기의 모습. /사진=뉴스1


한국전력 (21,150원 ▼150 -0.70%)공사의 지난해 적자는 32조6034억원이다. 한전 직원들에게 공사 운영을 잘못한 책임을 물어 이 적자를 갚으라고 한다면 몇 년이 걸릴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더한 한전 근로자 2만3697명의 연간 급여총액은 1조5127억원. 앞으로 22년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한전 직원 전원이 월급 한푼 안 받고 일하면 메울 수 있다.



한전의 적자를 두고 방만경영과 성과급 잔치가 문제라고 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021년 결산 기준 한전 정직원은 1인당 평균 연봉은 8496만원, 이 가운데 성과급은 1737만원이다. 억대에 가까운 평균 연봉인 데다 연봉의 20%를 성과급으로 가져갔으니 얼핏보면 잔치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한전이 모든 직원에게 월급을 퍼준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한전의 최근 5년간 1인당 평균 성과상여금을 살펴보면 △2017년 1889만원 △2018년 1832만원 △2019년 1867만원 △2020년 1856만원 △2021년 1737만원으로 2019년을 제외하고 모두 전년대비 감소했다.



매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따른 성과급이 줄어든 영향이다. 성과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본급 인상률은 제한적이다. 2020년 전년 대비 2.8% 기본급이 오른 것을 제외하면 1% 안팎 인상에 그쳤다. 결국 전체 보수 평균은 내리막을 걷고 있다.

신입사원을 보면 이들의 초임은 연간 4029만원이다. 전체 평균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직급별 급여와 호봉제에 따른 '역피라미드형' 연봉 구조가 주는 비효율이 얼마간 있을 지 몰라도 '성과급 잔치'나 '눈 먼 돈'이라는 비난은 지나치다. 적어도 이제 갓 입사해 한창 일하고 있을 주니어 직원을 적자폭탄의 원흉으로 모는 것은 억울한 처사다.

한전의 구멍난 곳간을 메우기에도 턱없이 부족하고 실제로 늘어나지도 않은 연봉에 사람들은 분노한다. 한전이 역대급 적자를 내 전기요금을 올려야한다는데 그 직원들은 성과급을 1000만원씩 가져 간다는 이유에서다.


앞뒤 맥락을 잘라내고 몇가지 자극적인 사실만을 나열하면 "전기요금 올리기 전에 성과급부터 뺏으라"는 아우성으로 돌아온다. 정치권은 억대 연봉자가 수두룩 한 한전의 방만경영이 문제라고 대중의 분노에 부채질을 한다.

한전이 비효율적인 급여체계를 갖고 있고 성과급이 지나치다면 분명 개선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한전의 지난 1년간 적자를 갚으려면 임직원 2만여명이 22년간 숨만 쉬고 일해야 하듯이 적자폭탄의 근본적인 원인은 성과급 잔치가 아니고 그들의 급여를 깎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한전이 지난해 낸 32조원대 적자는 최근 몇년간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각종 정치적 이유로 원가 반영을 미뤄온 결과다. 소비자 가격이 동결된 탓에 가격 상승에 따른 사용량 감소라는 가격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전기 사용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공기업이 서민 대신 빚을 져도 괜찮다면 요금인상을 억제해 온 이들의 정치적 책임이라도 있어야 한다. 본질적이고 거대한 문제를 두고 직원들의 주머니탓을 하는 것은 한전의 적자폭탄을 만든 이들의 책임 회피와 여론의 눈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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