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손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러시아로부터 8개월 만에 탈환한 헤르손을 방문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라사(러시아)에 가살극(카자크족)이 있는데, 그들은 사납고 악독해 구라파(유럽)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와전돼 '가살극 사람들은 퇴화되지 않은 꼬리가 있으며 사람 고기를 식량으로 삼는다'는 소문도 났다." (황현, 매천야록)
'전쟁론'을 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도 카자크족의 용맹함과 잔혹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란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나폴레옹의 얘기가 허언은 아닌듯 하다. 프로이센(현 독일)의 군인이었던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과 싸우다 포로가 돼 전장 이곳저곳을 끌려다녔다. 당시 나폴레옹 군대는 러시아 침공에 실패하고 퇴각할 때 카자크족의 습격을 받아 괴멸적 피해를 입었다.
중요한 건 고골이 이 소설을 쓴 이유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고골은 자신의 민족에 대한 소설을 쓰기 위해 소재를 찾던 중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즉 우크라이나 민족이 자신들의 뿌리를 카자크족에서 찾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오늘날 우크라이나 국가(國歌)는 '우리가 카자크의 피가 흐르는 형제임을 보여주리라'는 후렴으로 끝난다.
#2.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 초기 구형 전차를 앞세운 전격전에서 실패를 맛본 러시아는 이후 포격전과 보병전, 그리고 신형 전차전 등으로 전술을 바꾸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의 신형 전차에 맞서 서방에서 전차, 자주포, 장갑차, 포탄 등을 공수받으며 춘계 대공세에 대비하고 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전쟁이 단기간 내 끝날 것이란 일각의 전망은 일찌감치 빗나갔다. 수많은 이들이 생명과 터전을 잃었다. 전 세계인들이 비싸진 기름값과 늘어난 겨울철 난방비, 길어진 비행시간으로 고통받고 있다. 교착 국면과 일진일퇴가 반복되면서 전쟁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계속될지, 몇 번의 겨울을 더 넘겨야 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게 됐다.
현대전은 물량전이라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국력이나 인구수로만 하는 게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수당전쟁에서 고구려가, 월남전에서 베트남이,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겼겠나. 상대가 카자크족의 피가 흐르는 우크라이나인들이고, 더구나 이들에게 세계최강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원이 쏟아지고 있다면 국력의 단순비교는 의미가 없다. 결국 어느 순간 양쪽 다 지칠대로 지쳐 휴전 협정에 서명하는 게 현실적 시나리오 아닐까.
이번 전쟁으로 '이상주의 국제정치학'은 설 자리를 잃었고, 세계는 다시 정글과 같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시대로 돌아갔다. 이미 사실상의 '신냉전'에 들어선 국제질서에서 언제까지 '줄타기 외교'가 가능할까.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독일조차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차 지원을 결정했다. 만약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진영에 의해 서방이 패퇴하고, 이것이 중국의 대만 침략 야욕을 부추긴다면 그땐 우리나라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다음 수순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