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하면 돈 번다"…'탄소배출권=기회' 기업의 역발상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2023.02.0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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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탄소국경세가 온다③

"미리 준비하면 돈 번다"…'탄소배출권=기회' 기업의 역발상


탄소 배출 비용이 기업의 위기요인으로 떠올랐지만 이를 기회로 보고 투자 전략에 반영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철강업계 다음으로 탄소 배출량이 많은 석유화학업계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상 품목에 포함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자체적으로 내부 탄소 배출량에 비용을 산정하는 '내부 탄소 가격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내부 탄소 가격제는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기업 내 직간접배출량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래 탄소 가격 변화를 반영해 자체적으로 내부 탄소 가격을 설정하고, 이를 투자 안건 심의 시 적용한다. 기존엔 투자 안건을 평가할 때 현재의 경제적 가치에 중점을 뒀다면, 내부 탄소 가격제는 미래 탄소 비용까지 반영한 종합적인 관점에서 투자 경제성을 검토한다.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투자는 '가치'로, 증가시키는 투자에는 '비용'으로 반영하는 식이다.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 탄소 배출이 많은 사업은 배제하고 저탄소 사업을 확대해 탄소배출권거래제(ETS) 시장에 대응하고 탄소를 더 적극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



'넷 제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말부터 내부 탄소 가격제를 투자 안건 심의에 적용하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탄소 배출권 가격을 유가, 환율처럼 경영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지표에 포함해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다양한 글로벌 전문 기관이 예측한 미래 탄소 가격 시나리오를 고려해 내부 탄소 가격을 설정했다. 유럽연합(EU)·미국·한국 등 글로벌 사업장이 들어선 주요 권역별 가격에 따라 2025년 tCO₂(이산화탄소톤)당 40~95달러, 2027년 tCO₂당 60~105달러, 중·장기 가격은 2030년 tCO₂당 120달러, 2040년 tCO₂당 200달러로 증가하는 식이다. 비용을 높게 잡았기 때문에 탄소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투자만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과 산하 8개 사업자회사가 이 제도를 적용하고 있는데, SK그룹 차원에서 벤치마킹을 시도하고 있어 확산될 수 있다. SK그룹은 2021년 6월 아시아 민간기업 최초로 탄소감축 방법론과 탄소 감축량을 인증하는 탄소감축인증센터를 설립했다. 지난해 10월까지 SK 관계사의 저전력 반도체, 연비개선 윤활유 등 16건 방법론 및 74만톤의 감축 실적을 인증했다. 조환성 SK이노베이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추진담당 PL은 "SK이노베이션은 탄소배출이 많은 사업은 결국 퇴출되는 세상이 올 거라 보고 넷 제로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꾸려고 한다"며 "경영진들은 탄소배출권 관련 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을 위험이 아니라 기회로 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LG화학도 내부 탄소 가격제를 시범 도입 중이며 연내 공식 도입한다. 새로운 사업 투자 시 활용할 수 있는 내부 심사 프로세스 가이드를 마련해 전사적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소비재 기업도 나섰다. KT&G는 지난해 3월부터 내부 탄소 가격제를 도입한 후 투자 결정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 제조본부 설비 투자(CAPEX)에 시범 적용 중이고 향후 신성장 투자 등 경영 전반으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CJ제일제당도 해외 바이오 사업장에 내부 탄소세를 도입하고 올해 전사 확대 적용을 논의 중이다.

민간에서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VCM)을 조성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VCM은 민간 기관이 인증한 탄소배출권이 거래되는 민간 주도 탄소시장이다. 이 시장이 활성화되면 탄소감축 의무가 없는 기업이나 기관도 자발적으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다보스 포럼에선 2030년까지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이 약 26억톤 수준으로, 세계 탄소배출량의 7~8% 수준까지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VCM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와 아시아 VCM을 구축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SK그룹 관계자는 "탄소배출권 시장이 성립되려면 공통의 기준이 있어야 되는데 탄소감축인증 방법론 등 다양한 부분에서 표준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구체화되면 경제적 실익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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