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가창력은 일품인데…뮤지컬 '베토벤', 아쉬웠던 두가지

머니투데이 전형주 기자 2023.01.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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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1812년 7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한테 보내는 편지 세 통을 남겼다. 끝내 부치지 못한 이 세 통의 편지는 베토벤의 작고 이후에야 발견됐다. 다만 수신인인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뮤지컬 '베토벤'은 이 불멸의 연인이 유부녀 안토니 브렌타노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위대한 악성(樂聖)이지만, 고독하고 외로운 괴짜인 베토벤이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준 안토니와 눈이 맞으면서 사랑에 눈을 뜨는 내용을 담았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안토니를 만나 행복해한다. 금기의 사랑에 결국 좌절하지만, 자신에게 닥친 지독한 운명을 음악으로 승화한다.

화려한 볼거리…출연진 가창력은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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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K뮤지컬컴퍼니의 다섯 번째 창작 뮤지컬인 '베토벤'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모차르트!', '레베카' 등을 만든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극작가 미하엘 쿤체가 참여했고, 출연진도 화려하다. 카이·박효신·박은테가 베토벤을, 옥주현·조정은·윤공주가 안토니를 연기한다.

창작진과 출연진의 면면이 화려한 만큼 이 뮤지컬의 강점은 넘버에 있다. 넘버 52개 모두 '월광 소나타', '비창 소나타', '엘리제를 위하여', '영웅 교향곡', '운명 교향곡' 등 잘 알려진 기악곡을 편곡해 만들어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출연진의 가창력은 일품이다. 기자가 관람한 20일 오후 7시 30분 공연에서는 카이, 옥주현이 열연했는데, 카이가 부른 1·2부의 엔딩 넘버 '너의 운명'은 '운명 교향곡'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감정을 극대화했다. 고도의 가창력과 풍부한 성량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실베스터 르베이는 EMK뮤지컬컴퍼니를 통해 "관객이 캐릭터에 더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면 원곡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베토벤의 음악을 공부하고, 사용하고 싶은 곡을 선별했으며, 필요하면 멜로디를 작곡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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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과 무대 장치도 잘 썼다. 와이어와 스크린을 활용해 좁은 무대로 오스트리아 빈, 하일리겐슈타트, 독일 프랑크푸르트, 체코 프라하를 옮겨왔다. 천장에서 무대 장치를 와이어에 매달아 끌어내리는 기법으로 프라하의 명소 카를교까지 순식간에 재연하고 해체했다.

스크린으로는 천둥과 번개, 비, 강물을 구현했다. 다뉴부강,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베토벤과 안토니의 밀회를 그린 장면은 스크린을 가장 잘 활용한 대목이다.

독특한 연출로도 재미를 줬다. '혼령'이자 '영감'인 베토벤의 내면을 의인화해 리드미컬한 안무로 보여줬다. 2막 초반 금발의 가발을 쓴 오케스트라단을 베토벤이 직접 지휘하는 장면도 예상치 못한 볼거리다.

명품 보이스도 덮지 못한 단점들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약점은 대본과 드라마다. 무엇보다 유부녀와 금기의 사랑을 뒷받침할 서사가 부족하다. 안토니가 1부에서 킨스키 공작한테 쫓겨날 뻔한 베토벤을 구제해준 게 둘이 가진 인연의 전부다.

베토벤이 안토니한테 다시 버려지고, 청력마저 잃으면서 느꼈을 상실감 역시 극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청력을 잃었다고 진단한 의사한테 몇 번 화를 내는 것으로 그치면서 감정 몰입을 방해했다.

이 감정선이 흔들리면서 결국 베토벤이 장애를 딛고 완성한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이자 걸작인 교향곡 제9번(엔딩 넘버 '피날레')의 의미도 퇴색됐다.

가사는 구어체와 대화체를 사용해 쉽게 전달되지만, 지나치게 단순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화려한 볼거리, 출연진의 가창력에도 한계가 뚜렷해 보이는 이유다.

공연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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