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최 회장 취임 당시 재계 순위 5위에서 현재 2위로 발돋움한 과정에서 노 관장이 총수가족 안살림을 맡아 꾸려 나간 공을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슬하의 자녀들이 어느 재벌가 자녀들보다 반듯하게 성장한 데는 노 관장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이혼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상속재벌 재산분할에 인색한 우리 법원을 생각하면 상급심에서도 노 관장이 청구한 대로 받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반란중요임무 종사, 상관살해, 초병살해, 내란중요임무 종사, 뇌물 등 8개 죄목으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17년이 확정됐다. 법원 판결문에는 그가 12·12 사건이나 5·17사건에 2인자로 관여했다고 적시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을 거론할 때 이런 역사적 범죄행위에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외교, 통일 분야에서 이룬 위대한 업적은 항상 덮이기 마련이다.
노 전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 상당수의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밖에 없는데 유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것 자체가 선처였다. 이마저도 감옥에 갇힌 기간은 겨우 2년여였다. 특별사면은 죗값을 충분히 치러서가 아니라 정치공학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연좌제는 허용되지 않는다. 법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형사) 책임이 노 관장이나 노재헌씨에게 승계되진 않는다. 또 가족들이 불리한 처우를 받지도 않아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 과오가 큰 이들의 후손이 떳떳하게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을미사변에 가담한 우범선의 아들 우장춘 박사나 을사3흉 이하영의 손자이자 일제 귀족 이규원의 아들인 이종찬 장군 같은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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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책임은 그 자체로 운명이다. 상속포기라는 것도, 한정상속이라는 것도 없다. 5·18 피해자를 비롯한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국가가 막대한 금액을 배상하고 있지만 그 행위에 책임있는 이들에 대한 구상권은 행사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징금 약 2629억원을 선고받고 16년에 걸쳐 완납했지만 이는 민주화 열망을 짓밟은 데 따른 징벌이 아닌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기업인들에게 받은 뇌물에 대응해 내려진 처분이다.
진정성은 그것을 보여줄 수 있고 증명할 수 있어야 가치가 있다. 이번 재산분할은 어쩌면 노 전 대통령의 후손들에게는 기회다. 기독교인인 노 관장에게 665억원은 능력과 재능을 뜻하는 '달란트'가 될 것이다. 진정한 화해를 이루고 역사적 전환점을 만드는 데 그 달란트가 온전히 쓰이길 바란다. 그래야 반신반의한 여론은 잠들 것이며, 노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이룬 업적에 대한 재평가도 자연스럽게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