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액체를 다시 걸러서 고체부와 액체부를 나누는 공정을 거치고 나면 고체부에서는 PET를 구성하는 단량체 중 하나인 DMT(디메틸테레프탈레이트)를, 액체부에서는 증류 작업을 거쳐 또 다른 단량체 MEG(모노에틸렌글리콜)를 얻을 수 있다. 이 두 물질을 각각 정제하고 합치면 다시 새 PET가 탄생한다.
지난 8월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 캐나다 퀘벡주에 위치한 루프인더스트리 본사를 찾았을 때 눈으로 확인한 이 공정은 이 회사의 실험실 단계의 것이었다. 건물 바로 옆 실제 가동중인 공장 내 반응기 크기는 6000L에 달했고 이런 반 응기가 총 두 개였다. 이곳의 재활용 플라스틱 생산능력은 현재 연간 약 1000톤이다. 현재 캐나다 베캉쿠르, 프랑스, 한국 울산 등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데 생산능력은 각각 최소 7만톤 이상이 될 예정이다.
메탄올을 활용한 해중합 기술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50~60년 전부터 등장했던 기술이지만 문제는 기술 구현을 위해 280~350도(℃)에 이르는 고온이 필요해 원료 물질을 얻기 위해 너무나 큰 에너지가 든다는 점이었다. 루프의 장점은 저온 기술이다. 85도에서 반응시켜 원하는 원료를 얻을 수 있어서 에너지가 절약된다. 또 고온일수록 필요없는 부반응, 부산물이 생길 수 있는데 이같은 문제 발생률도 낮춰 고순도의 물질을 얻을 수 있다.
비결은 촉매에 있다. 촉매는 반응 활성화 에너지를 낮춰 낮은 온도에서도 원하는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 촉매에 루프만의 기술력과 비법이 집약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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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에너지를 투입해 고순도 재활용 PET를 실제 양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글로벌 유명 기업들이 먼저 알아봤다. 에비앙, 록시땅 외에도 로레알, 펩시코, 다논 등이 원료 공급 관련 협업 중이다.
(사진 맨 아래)루프인더스트리 공장에 대해 소개 중인 아델 에사담 루프인더스트리 부사장/사진=김성은 기자
루프가 가진 또 다른 기술 특징은 화학적 재활용이 까다롭다고 알려진 버려진 카펫과 같은 폴리에스테르 섬유, 맥주병 같은 유색 PET도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여기서 DMT와 MEG를 추출해 새로운 투명 페트병 제작이 가능하다.
솔로미타 루프 CEO는 "전세계적으로 캐나다 재활용률은 낮은 편에 속한다"라며 "특히 캐나다에서 폐의류에 대한 재활용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보는데 우리의 기술을 활용하면 의류는 물론 전체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올해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캐나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6%에 불과해 세계 평균(9%), OECD 평균(9%)에 못미쳤다. 캐나다의 연간 플라스틱 폐기물량은 300만톤 중 상당수가 소각되거나 매립되거나 재활용되지 않는 형태로 버려진단 뜻이다.
캐나다 정부도 위기를 인식,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제로'에 도전하는 정책을 선언했는데 루프는 이같은 정책이 실현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루프 같은 기업의 혁신 기술력을 꼽았다.
솔로미타 CEO는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해 하나는 (일회용)플라스틱을 아예 없앨 것, 또 다른 하나는 재활용 재료를 더 많이 넣을 것을 요구한다"며 "기존에 재활용하지 못하던 것들을 재활용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정부 목표 달성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재활용 플라스틱 제조 비용이 화석연료 기반 플라스틱보다 높다. 따라서 순환경제 생태계가 초기 잘 안착하려면 보조금 지원 등 정부의 역할도 중요한데 캐나다 정부 역시 이 부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솔로미타 CEO는 이어 "현재 베캉쿠르에 짓고 있는 공장에 대해서도 프로젝트 대출 지원이나 보조금 같은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정부는 우리와 같은 재활용 혁신기업을 국가의 중요한 사회 기반시설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니엘 솔로미타 루프 CEO/사진=김성은 기자
한국환경연구원(KEI)의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순환경제 정책 로드맵 연구' 제하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은 이르면 2016년부터 순환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관련 정책들을 추진 중이다.
우선 유럽연합(EU)은 2019년 12월 기후중립 사회 전환을 위한 정책모음인 '유럽 그린딜'을 발표했고 이듬해 3월 그린딜의 일환으로 '순환경제 신행동계획'을 채택했다. 순환경제 신행동계획은 △지속가능한 제품 설계 △소비자권리 강화 △생산공정의 순환성 등 3개 정책 프레임워크(계획)로 구성됐으며 각각 △에코디자인을 통한 제품의 순환성 강화 △소비자의 정보접근성·수리권 강화 △산업계와 연계 등을 통한 시너지 등을 내용으로 담았다.
순환경제 신행동계획은 또 부문별로 △전자제품 및 ICT(정보통신기술) △배터리·자동차 △포장재 △플라스틱 △섬유 △건물 △음식·물·영양소 등 순환경제 조성가능성이 큰 주요 분야에 따라 실행 전략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미지원과 수리 부품 공급 미비 등으로 순환성이 떨어지는 전자제품에 대한 사후 서비스 규제를 강화하거나 차량용 배터리 재활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개선방안을 촉구하는 식이다.
유럽 국가 별로는 핀란드와 독일 등이 순환경제 로드맵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 핀란드는 2016년 '순환경제 로드맵 2016-2025'를 수립, 국가 기준 처음으로 순환경제 로드맵을 제시한 나라다. 경제와 환경, 사회 등 3개 분야에서 순환경제 구현 방향을 제시하고 있고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 △산림기반 순환 △순환 기술 △운송 및 물류 △공동체 지침 등에 중점을 뒀다.
지난해 순환경제 로드맵을 발표한 독일은 △제품 △비즈니스모델 △사회기술 △사회 등 4가지 방향에서 순환경제에 접근했다. 각 부문마다 순환성을 고려한 제품설계와 이해관계자들이 순환경제 가치 창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 경제적 인센티브 및 공공조달 지원, 사회 교육 및 투명성 제고 등 이행 노력을 담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산업계, 연구기관의 역할을 2024년·2027년·2030년 단계별로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은 2020년 중장기적 관점에서 자원소비를 줄이고 부가가치를 극대화, 지속가능한 성장형 모델로 전환하기 위한 '순환경제 비전 2020'을 발표했다. △기업의 자발적인 활동과 재활용 시장 장려 등을 통한 순환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 △공공조달 등을 통한 제품시장 구축 △자원사용 최소화와 재활용 기술 고도화를 통한 자원순환 시스템 구축 등이 골자다. 일본 역시 관련 법 개정을 통해 △플라스틱 △섬유 △탄소섬유보강폴리머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자원순환 시스템 개발이 시급한 분야를 지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