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무너지는 대학, 방관할 것인가

머니투데이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2022.09.2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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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온다면 어디서 나올까. 대기업 연구소일까, 아니면 대학 연구실일까. 지난 10년 동안 과학분야 수상자를 살펴봤다. 열에 아홉은 대학에 몸담고 있었다. 당장 사업화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특허를 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특허등록 상위 20개 기관 중 4곳이 대학이었다. 기초과학은 물론 실용기술을 창출하는 데도 대학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가 화두다. 반도체 생산에는 어떤 인력이 필요할까. 연구·개발과 설계를 위한 고급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조와 공정을 담당하는 기술인력도 중요하다. 소재, 부품, 장비를 공급하는 협력업체 인력도 필수다. 반도체 개발자는 연구중심 대학이 육성한다면 생산현장을 책임지는 중추인력은 교육중심 대학에서 나온다. 반도체 사례를 들었지만 다른 산업도 그럴 것이다. 어느 분야든 어느 수준이든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인재는 대학을 통해 배출된다.



이런 대학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큰 원인은 학생감소다. 대학에 들어갈 학령인구가 급속히 줄어들어 2024학년도에는 정원 대비 10만명 정도 결원이 생긴다. 누적된 재수생 때문에 버티지만 내년에는 대학 3곳 중 1곳이 70%도 못 채울 수 있다. 대학살림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문을 닫을 대학이 생겨날 수도 있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지역의 중견기업은 지방대학이 길러낸 인재로 돌아가고 캠퍼스 상권은 대학이 먹여살린다. 변변한 콘서트홀 하나 없는 지역에서 대학은 문화자산이고 주민을 위한 일자리와 복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청년이 모이는 대학이 사라진다면 '지역소멸'의 초시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문제다. 전체 공대생의 60%가 지방대학에 다니는 상황에서 중추산업 인력육성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생태계 구조로 돼 있다. 지방대학이 쓰러지면 수도권 연구중심 대학도 위태로워진다. 교수 채용시장이 위축될 것이고 대학원 진학기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10년 넘게 동결된 등록금은 교수의 급여를 묶어놓았고 우수인재는 대학원보다 고연봉의 대기업을 선호한다. 대학원 부실은 곧 기초학문과 기초과학의 붕괴를 가져온다. 글로벌 초일류 대학은 요원하고 학문 후속세대도 단절된다. 대학을 통한 지식창출과 인재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상황이 이런데 정책은 표류하고 있다. 물론 당장 급한 첨단산업 인력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너지는 대학 생태계를 바로세우는 정책패키지와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규제개혁에 나서야 한다. 세계 대학들이 에듀테크를 앞세우며 경쟁력을 키우는데 우리 대학은 여전히 아날로그 규제에 허덕인다. 고객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는 기업형 교육기관이 늘고 온라인 학습으로 세계 명문대 강의를 무료로 듣는 시대가 됐다. 새로운 학습체계가 떠오르는데 법령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사안마다 찔끔찔끔 하나씩 풀어줄 뿐 전면적인 혁신은 미뤄지고 있다. 교육부 조직도 마찬가지다. 국립대, 사립대, 전문대, 원격대학으로 영토를 나눠 분할통치하는 체제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조직을 개편하고 규제를 철폐하려면 담대한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혁신 못지않게 부작용과 책임을 걱정하는 관료들의 '염려증'이 걸림돌이다. 그래서 더욱 비전과 안목을 갖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성인으로서 양심과 책임을 망각한 일부 교수의 부조리 때문에 대학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깊어진다. 대학과 지역사회가 협력해서 위기를 극복한 모델도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대학이 위기임은 분명하다. 대학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어물쩍 넘어가면 그 대가는 미래 세대가 치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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