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좀비랜드' 만든 죽음의 마약…10·20 '의료 사각' 파고든다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22.09.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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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좀비랜드' 만든 죽음의 마약…10·20 '의료 사각' 파고든다


미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도시 필라델피아. 허리를 굽히고 팔을 늘어뜨린채 거리를 헤메는 마약 중독자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얼마전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뇌를 손상시키는 펜타닐 중독자들이 많아 이 도시의 일부 지역은 '좀비랜드'로 불릴 정도다. 그런데 마냥 타국 도시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풍경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의료계 평이다. 국내에서도 병원 처방의 빈틈을 타고 펜타닐이 급속도로 오남용 되고 있어서다. 특히 미성년자들의 처방이 빠른 속도로 늘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2일 경찰청과 의료계 등에 따르면, 10대 미성년자에게 처방된 펜타닐 패치 건수는 2019년 22건에서 2020년 624건으로 1년 만에 28배 이상 급증했다. 20대 처방 역시 2020년 2만4000여건으로 같은 기간 2배 이상 늘었다.



1959년 개발된 펜타닐은 마약성 진통제로 말기 암 처럼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주로 처방된다. 헤로인의 100배, 모르핀의 200배 이상의 효능을 갖고 있으며 주로 치료 마지막 단계에 사용된다. 때문에 별 다른 이유없이 최근 1년간 10~20대 처방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치료가 아닌 마약 용도로 잘못 처방된 건수가 그만큼 늘어난 방증일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 중론이다.

펜타닐은 중독성이 높아 '마약 끝판왕'으로 통하는 헤로인보다도 100배 효능이 높은 만큼 중독성 역시 헤로인 보다 높다. 펜타닐에 중독되면 금단 증상과 함께 구토, 피로감, 두통, 호흡억제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특히 산소 공급이 줄어 뇌 일부를 손상시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중독자들이 필라델피아 거리를 흡사 좀비와 같은 걸음걸이로 배회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 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펜타닐 중독의 심각성은 20대 래퍼 윤병호가 2021년 한 방송에 출연해 털어놓은 펜타닐 중독 후 경험담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당시 "벌레처럼 기어다니면서 펜타닐 부스러기라도 찾으려 쓰레기통을 뒤진다"며 "펜타닐 때문에 치아가 삭아서 어금니 4개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2022년 자택에서 또다시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됐다.

펜타닐 중독은 이미 미국에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미국 18~45세 청장년층의 사망원인 1위가 펜타닐일 정도다. 2020~2021년 18~45세 미국인 약 7만9000명이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자살이나 총기 사고, 차량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펜타닐 복용으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은 셈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10~20대를 중심으로 펜타닐 처방이 급증한 까닭은 △처방을 받기 쉽고△가격이 저렴한데다△투약도 간편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일부 학생들은 병원에서 허리가 아픈 척하며 펜타닐을 처방받았는데, 한 병원에서 최대 9번까지 처방받은 사례도 있었다. 주로 피부에 붙이는 패치 형태가 처방되는데 어디서나 펜타닐을 투약하기 쉬운 형태다. 10장 가량 들어가 있는 패치 한 팩이 15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처방 남용을 막기도 어려운 상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1년 의사가 진료 시 환자의 투약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의료쇼핑방지정보망' 서비스를 도입해 의료용 마약류의 잘못된 처방을 막겠다고 했지만, 이를 사용하는 의사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의료계 전언이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지난 8일 마약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환자의 '투약내역 조회 서비스'를 의무화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률을 위반할 경우 마약류 취급 의료업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해 오남용을 방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강 의원은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상황을 악용해 의료용 마약류 약품을 오남용하거나 불법 유통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마약류 처방 시 투약 내역 확인을 의무화하는 등 처방과 투약에 있어서 보다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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