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장릉 이어 김해 고인돌까지…지역 문화재 보존 참사 왜?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22.08.10 06:00
글자크기

전국 지자체 중 문화재 전담부서 설치 7%에 불과…문화재청, 지자체별 문화재 전담인력 배치 의무화 추진

현재 공사가 중단된 김해 구산동 지석묘의 모습. /사진=문화재청현재 공사가 중단된 김해 구산동 지석묘의 모습. /사진=문화재청


세계 최대 규모 고인돌로 알려진 '구산동 지석묘'가 문화유산 가치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가운데 관리 주체인 김해시가 문화재당국과 협의 없이 정비공사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김포 장릉 '왕릉뷰 아파트'처럼 지자체와 문화재청의 소통부족이 빚은 참사다. 문화재청은 지자체마다 문화재 전문인력 배치를 의무화해 현장대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9일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김해시 가야사복원과는 전날 구산동 지석묘에 대한 국가사적 지정 신청 철회를 통보했다. 지난 1월 국가 사적으로 승격을 신청한 지 8개월 만에 자진 철회했다. 정비·복원 공사 과정에서 문화재 원형을 훼손했단 사실이 드러나자 사적 지정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구산동 지석묘는 2006년 택지지구개발사업 중 발굴된 유적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280호다. 무게 350톤에 달하는 고인돌을 중심으로 고분시설 규모만 1615㎡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인돌로 알려졌다. 김해시는 이 고인돌 묘역을 국가사적으로 승격시키고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16억원을 들여 복원·정비에 나섰지만, 최근 공사에서 문화재가 훼손됐다.

문화재청의 전문가 현장조사 결과 지석묘 밑에 묘역을 표시하는 박석(얇고 넓적한 돌)과 청동기시대 문화층(文化層·유물이 있어 과거의 문화를 아는 데 도움이 되는 지층)이 확인됐다. 고인돌 축조 방식 등을 알 수 있는 중요 자료지만 김해시가 정비공사 중 박석을 제거했다 재설치하며 원형이 손상됐다. 매장문화재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큰 지표인 원형보존 원칙을 무너진 것이다.



문화재청과 협의만 했어도…
김해 구산동 지석묘 전경. /사진=문화재청김해 구산동 지석묘 전경. /사진=문화재청
무엇보다 정비공사 과정에서 문화재당국과 협의를 거치지 않았단 점이 드러나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박석을 들어내는 행위 등을 할 경우 담당 부처인 문화재청의 발굴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김해시가 무단으로 현상변경을 하고 공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내 현상변경을 하려면 문화재 보호대책을 수립하고, 이에 따른 조사를 이행해야 한다.

박석 공사와 관련해 문화재청과 사전협의만 했어도 훼손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박석을 들어내는 정비공사를 사전에 논의했다면 허락하지 않거나 다른 방식을 자문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해시도 입장문을 통해 "구산동 지석묘가 경남도 문화재라 경남도 현상변경 허가만 받고 정비사업을 시행했다"면서 "세세하게 챙기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고 시인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김포 장릉 왕릉뷰 아파트 사태와 묘하게 겹친다. 현재는 문화재청과 건설사의 맞대결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사건의 배경엔 아파트 건설허가를 내준 지자체인 인천 서구청과 문화재청의 소통 부족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이 2017년 관보에 실은 고시에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고층건물을 지을 경우 심의를 거치도록 했는데, 서구청이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 문제가 불거졌다.


문화재청 "지자체 문화재 전담인력 배치 필요"
문화재청이 일명 '왕릉뷰 아파트'의 입주 유보를 위한 행정 조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11일 오후 경기 김포시 장릉(사적 제202호) 앞 시야를 고층 아파트가 막고 있다. /사진=뉴시스문화재청이 일명 '왕릉뷰 아파트'의 입주 유보를 위한 행정 조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11일 오후 경기 김포시 장릉(사적 제202호) 앞 시야를 고층 아파트가 막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화재계에선 지자체의 문화재 전담인력 부재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국 226개 기초단체 중 문화재 전담부서를 설치한 곳은 7%(16개)에 불과하다. 72개 지자체는 전문인력조차 없다. 경주시 등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문화유산 비중이 큰 곳을 제외하면 대다수 지자체에선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문화재 관리 업무는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있는 셈이다.

전국에 지정·등록된 문화재 1만4600여건 중 77% 이상을 지자체가 관리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문화재계 관계자는 "문화재 관련 행정처리를 비전문가가 맡을 때가 많아 문화재 당국과 소통이 부족할 때가 많다"며 "문화재 보존보다 개발논리가 우선될 때도 많다보니 문제들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내년까지 '문화재보호법' 등의 개정을 통해 지자체마다 문화재 전문인력 배치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지난달 27일 "인구감소로 지역 향토유산 훼손되고 개발수요 많아지며 문화재보존이 등 갈등이 커지고 있다"며 "지역·현장 중심의 문화재 보존관리 역량을 키우기 위해 문화재 전문인력을 의무배치를 입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