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에 휘둘리는 나라, 중국[김지산의 '군맹무中']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2.07.0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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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추이에 전체 물가 휘청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중국 한 양돈 현장/사진=바이두중국 한 양돈 현장/사진=바이두


제육볶음이라는 말은 저육(猪肉)볶음에서 유래됐다. 말 그대로 돼지고기 볶음이다. 한국 식당에서는 제육볶음을 먹으려면 이름 전체를 특정해야 하지만 중국에서 고기라고 하면 무조건 돼지고기다. 닭고기, 오리고기는 전체 이름을 불러야 구분된다.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이 얼마나 유별난지 보여준다.

역사의 주요 페이지마다 돼지고기는 빠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송나라 문인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동파육이다.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다음 술과 파, 간장 등으로 양념을 한 다음 센 불에 끓이고 약한 불로 푹 고아낸 음식이다.



그전까지 귀족들은 양고기를 주로 먹고 서민들은 요리를 할 줄 몰라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동파육에 이르러 돼지고기 전성시대가 열렸다. 마오쩌둥이 가장 사랑한 요리가 동파육이었다. 오늘날 중국 식당 대부분은 동파육을 판다.

돼지고기의 진짜 신분 상승은 명나라 건국과 함께였다. 하층민들의 주된 식재료였던 돼지가 평민 출신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자 황실의 요리가 됐다. 명나라 건국은 돼지고기가 계층과 지역을 뛰어넘어 요리 천하통일을 이룬 사건이기도 했다.



돼지는 키우기가 쉽고 빨리 자라며 원재료비가 상대적으로 적다. 돼지의 반대편에는 소가 있다. 천천히 자라고 키우는 비용도 비싸다. 본전을 뽑자니 고깃값이 비싸다. 훠궈처럼 고기 몇 점에 채소들을 곁들여 먹지 않으면 평균 소득이 1만달러 중반인 중국인들이 고깃값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럼 중국인들은 돼지고기를 얼마나 먹을까. 중국 농업농촌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 1인당 소비량이 40.1kg으로 추산된다. 지구 인구 1인당 소비량의 2.5배가 넘는다. 세계 돼지 사육의 40%, 소비의 50%가 중국에서 이뤄진다.

일상적으로 돼지고기를 먹으니 인민들 소비에서 차지하는 돼지고깃값 비중이 작을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물가상승률을 추정할 때 돼지고깃값은 핵심 요소다. 각국은 물가상승률 산출을 위한 품목들마다 가중치를 부여하는데, 중국에서 돼지고깃값은 두 자릿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가 각각의 가중치를 공개하지 않다보니 전문가들은 물가상승률에 품목별 상승률을 대입해 각각의 가중치를 역산하는 방식을 취한다.

황원타오 중신건투 증권 애널리스트 역산 결과를 보자. 그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식품이 차지하는 가중치 비중이 18.4%에 이르는 것으로 봤다. 그는 돼지고기를 따로 분류하지는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돼지고기 가중치는 10~15%에 달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중국 식품 가중치는 미국(7.8%)보다 월등히 높다. 따라서 돼지고깃값 변동폭이 클수록 전체 물가가 요동친다. 극단적인 예가 세계 돼지고기 시장을 강타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발생한 2019년이다. 그해 10월 중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였는데 이는 2018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2.1%를 훨씬 넘어선 수치였다. 배경에는 돼지고깃값 급등이 있었다. 그 시기 돼지고깃값이 전년 동기 대비 101.3% 급등하자 전체 소비자물가를 2.43%p 끌어올린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은행 한재현 박사는 저서 '쉽게 배우는 중국경제'에서 "중국에는 돼지고기 주기(Pork Cycle)에 따라 물가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소위 포크플레이션(Porkflation)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옥수수 생산 지구. /사진=바이두옥수수 생산 지구. /사진=바이두
당연히 중국 정부는 돼지 수급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다. 지난해 농업농촌부는 양돈 농가의 암퇘지 수를 파악해 전체 돼지고기 생산능력을 조절하는 방안을 만들기도 했다. 암퇘지 수를 일정 수준 유지해야 인플레이션을 막고 농가 소득도 보전할 수 있다.

최근 성장률 저하 속에 돼지고깃값 급등으로 전체 물가가 출렁일 기미를 보이자 중국 정부는 공급자들을 향해 '처벌'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실제 이달 5일 현재 전국 돼지고기 평균 가격은 kg당 26.7위안으로 한 달 만에 26% 급등했다.

돼지고기 시장에서 여름은 전통적인 비수기인데도 가격이 치솟은 건 순전히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세계 식재료 비용이 뛰는 와중에 돼지 사료 비용이라고 온전할 리 없다. 7월 들어서자 며칠 사이에 돼지 사룟값이 톤당 150위안에서 300위안으로 두 배 뛰었다. 사료 비용은 돼지 사육 총 비용의 60%를 차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허덕일 때 중국은 예외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던 셈이다.

사룟값이 2배 뛰면 사료 이외 비용 요소를 빼더라도 돼지고기 상품 가격은 60%가 오른다. 최근 돼지고깃값 상승은 오히려 양돈 농가와 유통업자들이 원가 부담의 많은 부분을 흡수한 것으로 보여질 정도다.

단순하면서 명확한 시장 원리를 중국 정부는 폭리를 노리는 일부 악덕 업자들의 농간으로 간주하고 부정행위를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지난해 겨울을 앞두고 석탄 가격이 치솟자 석탄 업자들을 불러 모은 뒤 불필요하게 재고를 쌓아놓거나 이익을 많이 남기면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던 것과 판박이다.

정부 입장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최근 통계에서 청년실업률이 18.4%에 이르고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8%에 그친 와중에 물가마저 뛰는 건 현 지도부에 좋지 않은 신호다.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지을 가을 20차 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있다.

힘으로 돼지고깃값을 억누르는 데 성공한다면 중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고 급격한 금리 변화로 경기침체에 내몰리는 서구와 달리 목표(5.5% 안팎)에 미달할 수는 있어도 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돼지고깃값 이외 요소들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베이징 월세가 연초 대비 13%, 상하이가 3% 올라도 CPI에서 차지하는 가중치가 16.2%로 미국(32%)의 절반에 불과하다.

돼지고깃값만 잡으면 실제 삶의 수준은 몰라도 보여지는 숫자에서 정부와 공산당은 제 할 역할을 아주 잘 해낸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도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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