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아예 배임죄라는 범죄 자체가 없다. 대신 형법상 사기죄 등으로 한국의 배임죄에 해당하는 죄를 처벌하고 있다. 영미법 체계를 갖고 있는 미국은 법조항 자체보다도 판례가 중요한데, 일반적으로 '경영 판단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도 명목상 배임죄는 없으나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단 이 경우에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프랑스 대법원은 1985년 로젠블룸 판결을 통해 대기업 계열사간 거래를 법적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기업집단간 거래에서 일부 계열사가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이를 보상받을 것이란 신뢰가 존재하는 경우 배임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은 한때 '배임죄는 항상 통한다'는 원성을 받던 나라였으나 아락 판결 이후 리스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경영판단을 내려야 하는 기업의 입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독일은 주식법 제93조에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시하고 "업무에 관한 경영진의 결정이 적절한 정보에 근거하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이뤄진 사실이 합리적 방법으로 인정될 경우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사유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 독일처럼 형법상 배임죄 조항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도 한국과는 달리 배임죄를 좁은 범위에서만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형법 제247조에 따르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 또는 본인에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경우에만 배임죄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재판에선 목적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한국에 비해 배임죄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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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정거래법 등 경쟁법의 경우에도 해외 선진국에선 형사처벌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독일과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16개 국가에서는 경쟁법 위반행위로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카르텔(담합)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불공정행위 △사업자단체행위 등 행위에 대해 광범위하게 형벌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도 경쟁법에 형벌 규정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 비해 적용되는 유형이 적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위한 제도개선' 보고서에서 "기업인 개인을 형사처벌하는 법규가 너무 많다"며 "형사처벌형 행정규제를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명예교수는 "현재 2300여개의 행정형벌규정이 존재하고 이 중 과징금, 영업정지, 형사처벌까지 부과하는 경우도 많다"며 "행정규제의 제재수준에 대한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