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서울대 항공공학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항우연에 합류해 액체추진 과학로켓(KSR-III)과 나로호(KSLV-I) 개발에 참여했다. 2010년부터 누리호 개발 사업에 참여했고 2015년부터 개발 사업을 이끌고 있다. / 사진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21일 밤 10시30분.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돼 우주궤도에 인공위성을 안착시킨 지 5시간이 흘렀다. 고 본부장의 목소리는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여러 감정이 묻어났다. 누리호 발사 성공을 언급할 땐 환희로, 20여년간 기술 자립을 위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땐 목이 메인듯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누리호는 이륙 50여초 만에 최대 동압(Max Q)에 도달하고 발사 875초(14분35초) 이후 고도 700㎞에서 200㎏급 성능검증 위성을 분리했다. 성능검증 위성과 남극세종기지와 교신도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연구진이 지난 12년3개월여간 고대하고 기다렸던 그 순간이었다.
누리호가 고도 700㎞ 상공에서 성능검증 위성을 분리하는 역사적인 순간. / 영상=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가 발사 945초 후 1.3톤급 위성모사체(가짜 위성)를 분리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 10월 1차 발사된 누리호는 1.5톤급 위성모사체를 탑재한 바 있다. / 영상=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 없었던 나로호 때 설움, 이젠 추억"고 본부장은 2000년 항우연에 합류해 액체추진 과학로켓(KSR-III) 개발에 기여했다. 2002년 8월부터 러시아와 협업한 나로호(KSLV-I) 개발에 참여했다. 나로호는 2009년 8월과 2010년 6월 두 차례 발사 실패를 딛고 2013년 1월 결국 3차 발사에 성공한 프로젝트다. 이어 누리호 개발 초기 5년은 연구자로, 나머지 7년은 사업을 이끌어 온 사령탑이었다. 특히 누리호 사업 초기 5년은 로켓 액체엔진 연소 불안정으로 사업이 수년간 표류했고 대내외적으로 우주 개발에 냉소적인 시각마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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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때가 참 어려웠던 것 같아요. 실패를 두 차례 했고 특히 2차 발사 실패 이후에는 말도 생각도 달라서 원인 분석이 안 됐어요. 그래서 3차 발사가 굉장히 미뤄졌죠. 실패 원인을 분석하던 어느 날에는 러시아 쪽에서 자리를 박차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라는 이야기를 했고, 우리 기술이 부족하니깐 러시아에서 '너희들이 뭘 아냐'는 식으로 멸시도 받았죠. 누리호 기술개발 과정에선 그런 설움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 기억은 잊힐 것 같고 추억이 되겠죠."
나로호 이후에는 순수 국내 기술만으로 75톤 액체엔진을 개발하던 과정은 좌절과 재도전, 난관의 연속이었다. 액체엔진 연소 불안으로 설계를 수십차례 바꾼 끝에 누리호는 75톤급 액체엔진을 개발했다. 이 엔진을 4기 클러스터링(묶음)해 300톤급 추력(밀어 올리는 힘)을 냈고, 한국은 세계 7번째 중대형 액체로켓 엔진을 보유한 국가로 도약했다.
고 본부장은 "우리 땅에서 우리가 만든 발사체로 인공위성을 자유롭게 쏠 수 있다는 건 차원이 다른 의미"라며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연구자도 타국에서 발사하려면 오래 걸리고 설움을 겪는데 그런 어려움 없이 우리 땅에서 발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고난의 연속에도 '성공' 호언장담, 축적된 기술에 대한 믿음
누리호는 발사 직전까지도 여러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해 10월 1차 발사된 누리호는 고도 700㎞까지 도달했지만 목표 속도였던 초속 7.5㎞를 내지 못해 인공위성을 목표궤도에 안착시키지 못했다. 절치부심 끝에 준비한 2차 발사 과정도 험난했다. 누리호 2차 발사는 비바람으로 한 차례, 레벨센서 이상으로 또 한 차례 연기됐다.
그럴 때마다 고 본부장은 "원인 분석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문제 보완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결함 원인 말고 다른 문제는 없다" 등 문제 보완을 자신했다. 누리호는 항우연 연구진과 300여개 기업이 설계부터 제작, 조립, 시험 발사, 운용 등 전 과정을 직접했기 때문이다.
고 본부장은 "누리호는 모두 우리 손으로 했기 때문에 2차 발사를 앞두고 결함이 생긴 레벨센서 결함도 빠르게 작업을 마쳤다"며 "연구진이 설계를 모두 파악하고 있어 결함 부품을 제거하고 교체하는 작업도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1차 발사에 실패했고 2차 발사도 두 차례 연기되는 과정 자체가 연구진이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내년부터 후속으로 4차례 발사를 더 하면 정말 우리가 이제 남부럽지 않은, 남의 사례를 들여다 볼 필요 없이 우리들만의 사례를 가지고 우주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다만 고 본부장은 어제 성공하더라도 오늘 실패할 수 있는 분야가 로켓 기술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그는 "우리가 발사체를 언제 만들지, 기술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모르는 깜깜한 시절이 있었다"며 "누리호는 이제 첫걸음을 뗐으니 연구원들이 미래를 보고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본부장과 항우연 연구진은 이날 밤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 성공을 자축하며 축배를 들었다. 고 본부장은 22일 누리호 발사 리뷰 회의를 개최하고 각종 데이터를 최종 점검할 예정이다. 고 본부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향후 거취를 고민하는 듯한 언급도 했다. 그는 "할 일을 이제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연구원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정체돼 있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얘기할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2010년부터 누리호 개발에 참여했고 2015년부터 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기술개발 과정에서 여러 문제에 봉착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 '무표정'이 트레이드 마크다. / 사진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고흥=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우주를 향해 발사되고 있다. 2차 발사 누리호에는 성능검증위성과 4기의 큐브위성이 탑재됐다. 202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