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종말, 플랫폼의 부흥…돈맥을 읽는 자, 세상을 잡았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2.06.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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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금융위기에서 코로나까지…글로벌 기업 10년의 흥망성쇠①

석유의 종말, 플랫폼의 부흥…돈맥을 읽는 자, 세상을 잡았다


#. 글로벌 시장의 1990년대는 일본 종합상사의 시대였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한동안 일본의 제조업은 건재했다. 새천년 들어 주도권은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GM, 포드 등 미국이 이끄는 석유화학과 자동차로 넘어갔다. 특히 폭발적인 에너지 수요가 소환한 석유기업의 위상은 2010년대까지 이어졌다. 굳건했던 석유 부흥기에 균열을 낸 건 애플·아마존 등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한 디지털 정보통신 플랫폼이다. 2020년 전후로 주연 자리를 꿰찬 이른바 테크기업의 부상은 전통적인 방식의 제조산업을 대체한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 대전환으로 불린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과 인터브랜드의 글로벌 100대 브랜드로 집계된 전 세계 최상위 매출 기업,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주도산업의 흥망성쇠와 자본의 흐름이다. 머니투데이는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과 인터브랜드 글로벌 100대 브랜드를 바탕으로 글로벌 산업 변화와 국가별 기업 경쟁력을 집중 분석했다.



석유의 종말, 플랫폼의 부흥…돈맥을 읽는 자, 세상을 잡았다
최근 10여년 동안 글로벌 산업 구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 3가지로 전문가들은 아이폰의 등장과 2008년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을 든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10년 이상 이어진 양적완화로 한 손에는 넘치는 자금을, 다른 손엔 스마트폰을 든 인류는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꾸는 동시에 글로벌 핵심 산업 재편을 가속했다. 미국의 백화점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은 아마존과 은행산업을 바꾼 인터넷전문은행이 대표적이다. 2010년대가 마무리될 쯤 터진 코로나19 사태가 IT 기술과 맞물린 이런 변화의 속도를 더 부채질하면서 혁신하지 못한 기업은 줄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11년과 2021년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을 비교하면 이런 변화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2011년 500대 기업 가운데 183개사가 2021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의 3분의 1이 물갈이된 셈이다. 범위를 10위권으로 좁히면 로열더치셸(2위)을 필두로 엑손모빌(3위), BP(4위), 시노펙(5위), CNPC(6위), 셰브론(10위) 등 석유회사가 주름을 잡았던 2011년과 달리 2021년 명단에서 석유회사는 CNPC(4위), 시노펙(5위) 등 2곳에 그친다. 석유회사의 빈 자리는 아마존(3위), 애플(6위), CVS헬스(7위), 유나이티드헬스(8위) 등 ITC·바이오 플랫폼 기업이 채웠다.



기술업종에서 휴렛패커드(HP·28위→182위), 파나소닉(50위→154위), 텔레포니카(스페인 이동통신업체·78위→223위) 등 하드웨어 업체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알파벳(구글 모회사·22위), 알리바바(63위), 메타(페이스북 모회사·86위) 등 소프트웨어에서 강점을 보인 4차 산업 기반 기업이 부상한 것도 두드러진 변화다. 상품이 아닌 서비스와 플랫폼이 지배하기 시작한 시장은 제조업의 영원한 아이콘이자 2011년까지 글로벌 시가총액 1위였던 GE가 2018년 6월 다우존스지수 구성종목에서 퇴출당한 데서도 확인된다.

석유의 종말, 플랫폼의 부흥…돈맥을 읽는 자, 세상을 잡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석유와 자동차의 쇠퇴는 2030년까지 앞으로 8~9년 안에 자동차와 원유 수요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피크쇼크' 전망과도 맞물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9년 1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원유 수요 증가율이 2030년부터 거의 멈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소유의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증시에 상장한 것도 세계적인 '탈석유' 움직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국가대항전에 초점을 맞추면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가 더 거세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대중(對中) 무역전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의 국가별 매출은 2021년 기준 미국이 9조6500억달러, 중국이 8조9236억달러로 비슷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 오른 중국 기업은 135개사로 미국(122개사)을 이미 앞질렀다.


문제는 다시 한국이다. 한국 기업은 이런 세계적 흐름에서 여전히 동떨어져 있다. 삼성전자(2011년 22위→2021년 15위)를 빼면 현대차(55위→83위), SK(82위→129위), LG전자(171위→192위), 포스코(161위→226위) 등 대다수 기업의 순위가 떨어졌다. 단순히 기업의 순위 하락만이 아니라 10년 내내 순위권 기업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점이 더 뼈아프다. 미국의 플랫폼 기업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서서히 영토를 넓혀가고 있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가 그나마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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