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파는게 최선인가요?..'1조 빚' 서울지하철, 이름 장사 '급급'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기성훈 기자 2022.06.09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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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지하철역 50곳 역명 병기 유상판매…'적자 보전' 목적이라지만 논란도

서울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 4호선 신용산역, 2호선 역삼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역이름 옆에 신한카드와 아모레퍼시픽, 센터필드 등 기관·기업 명칭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3년 계약을 기준으로 약 3억~9억원을 받고 역이름을 팔았다.

이처럼 기관이나 기업 이름이 붙은 역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시가 최근 지하철역 50곳과 버스정류장 400곳 이름을 민간에 판매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적자 수렁에 빠진 시 입장에선 새로운 수입원을 마련할 수 있는 돌파구지만, 판매 대상에 역사성을 가진 '시청역' 등도 포함되며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남역 낙찰 최저가만 8억7600만원..역대 최고가 예약
시청역 파는게 최선인가요?..'1조 빚' 서울지하철, 이름 장사 '급급'


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7일 서울 지하철 1~8호선 내 50개역의 역명 병기 유상판매 사업 입찰공고를 시작했다. 50개역은 계약 기간이 만료된 기존 8개역과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강남역, 여의도역, 공덕역, 신도림역, 시청역 등 42곳이다. 낙찰을 위한 최저가인 입찰 기초금액은 강남역이 8억760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건대입구역 6억4900만원, 선릉역 5억8200만원, 신도림역 5억8000만원 등의 순이었다.

시는 이번 사업으로 서울교통공사의 재정난을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1~8호선 275개역 중 33개역에선 이미 역명을 병기 중이다. 대표적으로 종각역(SC제일은행)과 을지로3가역(신한카드), 압구정역(현대백화점), 신용산역(아모레퍼시픽) 등이 있다. 이들은 계약 기간 3년 기준 최대 8억7400만원에서 최소 1억1100만원을 내고 역 이름을 사용 중이다.



시 관계자는 "하반기에 50개역이 추가되면 공사 경영에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존에 계약을 체결한 곳 중 90%는 재계약을 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아울러 지하철역에 이어 버스정류장 이름 판매에도 나설 계획이다. 우선 유동인구와 상권, 공시지가 등을 분석해 400곳의 버스정류장을 추려 명칭 유상판매를 시범 운영하고, 판매 수익금을 버스업계에 지원하기 위한 관련 조례 개정도 추진한다. 현재는 정류장 이름을 팔더라도 수익금이 시로 우선 귀속돼 버스업계를 직접 지원할 수 없다.

적자 해소 기대…'시청역' 판매는 논란
/사진=뉴시스/사진=뉴시스
시가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이름 판매에 나서게 된 건 매년 쌓이고 있는 천문학적 액수의 적자 때문이다. 최근 5년간 공사의 당기순손실을 보면 2017년 5253억원→2018년 5389억원→2019년 5865억원→2020년 1조1137억원→2021년 9644억원으로 1조원에 달한다. 시 내 버스회사들은 지난해 무려 69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최근 심야 지하철과 버스 운행이 확대되며 올해 발생할 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공공성 훼손' 비판 여론을 의식한 시와 공사 측은 일단 꼼꼼한 심사를 거쳐 적합한 기업과 기관만을 선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일본과 미국, 영국 등에서도 철도 운영사들이 역명 병기를 통해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기관·기업에 홍보 기회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 이용객에게도 추가 정보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판매 대상에 단순 지역명이 아닌 '시청역'까지 포함되며 상징성 있는 역에 기업 이름을 붙이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오선근 사회공공연구원 연구부원장은 "지하철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승객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시청역은 하나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국인이 서울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시청역 옆에 붙은 기업명을 어떻게 볼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오현주 전 정의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역명 병기는) 단순히 역이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지리에 담긴 문화와 역사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아무리 적자가 심하더라도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할 문제"라고 비판했다. 인근 주민들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가령 교육기업 에듀윌은 2020년 노량진역에 역명 병기를 추진하려 했지만, 당시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며 물러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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