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일자 받았는데 전세금 날려"…'하루차' 전세사기 왜 못막나

머니투데이 이소은 기자 2022.05.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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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반복되는 전세사기, 왜?②뒷전으로 밀린 세입자 대항력

편집자주 최근 잇따라 '전세가=매매가' 무갭투자로 청년과 신혼부부 전세금을 떼 먹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나쁜집주인 공개법이 발의됐지만 개인정보 보호에 막혀 서민들은 '깜깜이' 전세계약을 해야한다. 되풀이 되는 전세사기, 막을 방법이 없는지 짚어봤다

(서울=뉴스1) 이성철 기자 = 주택 임대차(전·월세) 신고제 시행 첫날인 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전월세 신고 접수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는 6월 1일부터 보증금 6000만원 초과 또는 월세 30만원을 초과하는 주택 임대차 계약시 계약 당사자가 임대료, 임대기간 등의 계약 주요 내용을 계약 체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동주민센터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월세 신고제는 지난해 8월 임대료 공개를 통해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정보제공을 통한 임차인의 권리 보호 강화를 위해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2021.5.31/뉴스1  (서울=뉴스1) 이성철 기자 = 주택 임대차(전·월세) 신고제 시행 첫날인 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전월세 신고 접수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는 6월 1일부터 보증금 6000만원 초과 또는 월세 30만원을 초과하는 주택 임대차 계약시 계약 당사자가 임대료, 임대기간 등의 계약 주요 내용을 계약 체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동주민센터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월세 신고제는 지난해 8월 임대료 공개를 통해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정보제공을 통한 임차인의 권리 보호 강화를 위해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2021.5.31/뉴스1


#2020년 A씨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59㎡를 23억원에 매수하겠다고 했다. 당시 시세 21억원이었지만 A씨는 집주인 B씨에게 시세보다 비싼 값을 사는 대신 B씨에게 보증금 12억5000만원에 2년 간 전세로 거주해달라고 요구했다. B씨는 이를 수용해 A씨에게 집을 팔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계약당일 전입신고와 함께 확정일자까지 받아놨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B씨는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됐다. 근저당 사기를 당한 것이다.

현재 임대차보호법은 전입신고 후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으면 대항력이 생겨 세입자가 후순위권리자나 그밖의 채권자보다 먼저 보증금을 변제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B씨가 전세사기를 당한 이유는 이러한 대항력이 당일이 아닌 그 다음날 0시부터 발생하도록 돼 있어서다.



반면, 임대인의 변경 또는 근저당권 설정은 등기를 접수한 때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마친 당일(전세계약 시작일)에 집이 제3자에게 팔리거나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저당권 설정 등기가 이뤄지면 등기의 효력이 세입자의 대항권보다 우선하게 되는 것이다.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은 하루 차이로 후순위로 밀려 보호 받지 못하게 된다.

B씨 역시, A씨가 계약 당일 집에 25억80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하고 대부업체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서 전세사기를 당하게 됐다. A씨가 돈을 갚지 않아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보증금을 통째로 날리게 되는 꼴이다. B씨가 계약 직전까지 등기부등본을 통해 근저당이 없음을 확인하고 계약 직후 바로 전입신고와 함께 확정일자를 받았어도 소용이 없다.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2019년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확정일자의 효력발생 시기를 앞당기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다음해에도 민홍철 민주당 의원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2020년에는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이 기존 개정안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보증금 중 일정금액을 다른 권리관계보다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최우선 변제제도를 현실화 하는 방안까지 내놨다. 전입신고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같은날 근저당 등이 먼저 등기됐어도 세입자가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는 제안이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모두 국회 본회의장 문턱을 넘지 못하고 관련 소위에서 수개월째 계류돼다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전입신고 즉시 세입자의 대항력을 갖추도록 규정할 경우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대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발의된 법들은 모두 전입신고 즉시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경우 반대로 주민등록이 된 것을 모른 채 등기를 한 쪽이 선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세입자 대신 근저당권자(은행)를 상대로 한 사기행위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이런 사항을 고려해 등기에 접수된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하자는 법안도 나왔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임차인의 전입신고 당일 대항력이 발생하도록 하되 우선변제권은 전입신고 당일 등기에 접수된 순서에 따라 정하도록 하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지난 1월 대표발의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선후를 따질 수 있는 시스템이 먼저 도입돼야 한다. 현재 저당권설정 등 등기는 법원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지자체가 각자 관리하고 있는데 등기는 구체적인 시점이 기록되는 반면 전입신고는 그렇지 않다. 접수 시점이 명확한 등기가 전입신고보다 '먼저'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어 선후를 명확히 하는 행정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법 시행 의미가 없어진다.

홍석준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시스템 상으로는 주민등록과 등기 중 어느 게 먼저 이뤄졌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며 "법원, 지자체와의 논의를 통해 연계통합 시스템을 먼저 갖추고 법을 시행해야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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