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재판을 앞둔 의뢰인의 '단골 질문'

머니투데이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변호사 2022.05.02 02:05
글자크기
신민영 변호사신민영 변호사


재판을 앞둔 의뢰인이 많이 하는 질문은 "저는 재판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다. 민사재판의 경우 답변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다. 민사재판의 당사자는 법정에 나올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재판 기일에는 변호사들만 나와 그간 이루어진 서면 공방에 대해 간략하게 재확인하는 정도가 전부다. 재판정에 꼭 나와보고 싶다는 의뢰인이 있을 때는 "나오셔도 괜찮겠냐"고 반문할 정도다. 재판에 걸리는 시간이 대체로 5분에서 10분 정도라 법정까지 힘들게 나올 의뢰인의 시간이 걱정돼서다.

형사재판은 어떨까. 형사재판의 경우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반드시 법정에 출석해야 하지만 당사자가 꿔다놓은 보릿자루와 유사한 취급을 받는 것은 민사재판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일단 재판이 시작되면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생년월일, 주소, 등록기준지를 묻는다. 다른 사람이 대신 법정에 와서 피고인인 척하는지 가려내기 위해 묻는 것인데 이마저도 형식상 절차에 가깝다. 여기에 답하고 나면 피고인은 재판 끝까지 말 한마디 안 할 수 있다. 인적사항을 물은 뒤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할지를 묻고,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지를 묻는 절차인데 변호인이 대신 답할 수 있다. 증인신문을 할 때도 변호인이 하고 최종변론 역시 변호인의 몫이다. 변호인의 최종변론이 끝난 후에야 피고인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지를 묻는데 이에 답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피고인의 자유다.



한 사람의 인생을 가를 수 있는 재판이 이렇게 진행될 수 있는 이유는 대부분 재판이 종이 위에서 이뤄기 때문이다. 민사재판의 경우 변호사의 서면공방이 중심이고 형사재판 역시 수사기관이 만들어 제출한 증거기록에 기반해 재판이 이뤄진다. 기본적으로 피고인, 목격자, 피해자 진술은 수사관이 받아 적은 조서 형태로 재판에 제출되고 현장 CCTV도 원본 CD가 같이 제출되긴 하지만 특별한 요청이 없는 한 법정에서 제대로 틀어보지도 않고 재판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수사기관이 스냅샷을 모아 설명을 붙인 수사보고서가 CCTV를 대신하곤 한다(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카드뉴스 형태를 생각하면 될듯하다). 과학증거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 DNA분석, 교통사고 영상분석 등도 모두 전문가의 보고서 형태로 제출되니 법정에서 당사자가 말 한마디 안 하는데 재판진행이 가능한 것이다.

형사사건을 변호하면서 가장 큰 걱정은 이 증거기록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편향들이다. 피고인의 진술만 해도 진술에 들어 있던 디테일이 조서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많이 사라지곤 한다. CCTV의 스냅샷을 모은 수사보고서 역시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의 시점에서 의미 있는 사진 위주로 기록에 담다 보니 피고인 입장에서는 악마의 편집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기법들이 전문가 의견이라는 형태로 제출되는 일도 많다. 진술과정에서 녹화를 의무화해서 정보손실을 방지하는 논의,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미심쩍은 과학수사 기법에 대한 통제 같은 문제도 중요한 문제인데 수사권을 누가 가져가느냐는 문제에 가려 충분한 관심을 못 받는 듯하다. 수사를 누가 하느냐의 문제만큼 어떻게 하느냐에도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