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뚫은 초보해커…"특별한 노하우도 필요없다"

머니투데이 차현아 기자 2022.03.26 10:00
글자크기

[MT리포트-사이버 전쟁, ON AIR]②비대면 사회의 '적', 사이버 용병

편집자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사이버 전쟁도 확전 양상이다. 일상을 마비시키는 사이버전은 재래식 전쟁에 못지않은 파급력을 보인다. 분단국이자 IT강국인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디지털서비스 의존도가 높아진 만큼 정부 공공기관과 대기업, 개인 대상 탈취도 일상화됐다. 사이버 전쟁과 진화하는 해킹의 유형, 우리의 대응수준과 새 정부의 보안정책 방향을 짚어본다.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 해커그룹 랩서스는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을 연달아 해킹했다. 최소 5명 규모로 활동 개시 4개월 남짓의 신생 조직이 웬만한 국가보다도 보안 능력이 뛰어난 글로벌 IT(정보통신)기업을 해킹했지만, 특별한 노하우는 필요 없었다. 비밀번호를 잊은 내부 직원인 척 고객센터에 문의하거나, 협력업체 직원을 매수했다. 랩서스는 텔레그램 채널에 "삼성 다음으로 누구를 털지 투표해줘"란 글을 올렸고, 1위로 뽑힌 영국 통신기업 보다폰을 해킹했다며 '승전보'를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사회 전 분야의 디지털전환(DX) 속도가 빨라진 만큼 기존에는 예상치 못했던 곳의 보안 취약점이 무더기로 불어났다. 최근의 '사이버 공격'은 이런 약한 고리를 정밀 타격해 국가 안보시설부터 기업의 핵심기술, 개인의 프라이버시까지 모두 먹잇감으로 삼는다. 특히 글로벌 IT기업들의 굴욕은 아무리 최첨단 보안기술로 무장해도 '100% 안전지대는 없다'는 증거다. 전세계를 무대로 365일, 24시간 내내 전개되는 '사이버 전쟁'의 참상이다.



"고객센터에 암호 문의, 협력업체 매수"…누구나 해커가 된다
25일 국내 보안기업 S2W와 MS의 위협 인텔리전스 센터(MSTIC)가 펴낸 랩서스 해킹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IT기업 해킹 수법은 대부분 허무할 정도로 평범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내부 직원인 척 직접 고객센터에 문의를 하거나, 임시 비밀번호를 발급받았다. 비밀번호 힌트 질문으로 통상 '당신이 살았던 첫 동네', '어머니의 고향' 등 평범한 내용을 걸어두고, 그 답마저도 개인정보 수집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내부 직원 또는 협력업체 직원의 시스템 접근 크리덴셜(credential:자격증명)을 빼내기도 썼다. 가짜 웹사이트 접속을 유도해 탈취하거나, 직접 접촉해 돈을 주고 사기도 했다. 보안을 무력화하는 현란한 기술보다는 보안 정책 헛점과 부도덕한 개인을 노린 셈이다.



수법은 평범하지만 피해는 엄청나다. 랩서스는 LG전자 직원 계정, MS의 검색 서비스 빙 등의 소스코드,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 회로도, 삼성전자의 게정 서비스 관련 모든 소스코드 등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피해 기업들은 '핵심정보'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불안하다. 한 관계자는 "삼성에서 유출된 정보 수준에 따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생태계 전체가 심각한 위협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해커 그룹 랩서스가 LG전자 해킹 사실을 텔레그램에 공개한 모습. /사진=텔레그램 캡처 해커 그룹 랩서스가 LG전자 해킹 사실을 텔레그램에 공개한 모습. /사진=텔레그램 캡처
타깃 가리지 않는 '사이버 용병'…NATO "온라인은 전장"
더 큰 문제는 제2, 제3의 랩서스가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환경이 확산하며 해킹 기술 습득이 쉬워졌고, 해킹 도구도 온라인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해커들이 난립하는 이유는 사이버 공격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사이버 범죄 산업 규모는 연간 6조달러(약 7300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전통적 범죄인 마약과 무기 밀매 등으로 벌어들이는 범죄 수익을 압도한다. 특히 국제질서의 통제에서 벗어난 암호화폐 시장의 팽창으로, 해커들은 사이버 범죄의 수익금을 더 손쉽게 벌어들일 수 있게 됐다.

국가 단위에서 민간 해커들을 '사이버 용병'처럼 활용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타깃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을 뒤흔들거나, 소셜미디어에 거짓 정보를 흘려 정치·사회적 혼란을 초래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6월 언론 간담회에서 '해킹을 통한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애국심이 강한 러시아 민간 해커들의 소행일 수 있다"며 사실상 해킹 가능성을 인정했다.


실제로 글로벌 데이터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간첩행위, 명예훼손, 적국 정보국 운영 교란 등의 사이버 공격은 동시다발로 일어난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지정학적 목적의 공격용 랜섬웨어 중 배후 국가가 지목된 숫자는 이란(21개)이 가장 많았고 러시아(16개)·중국(4개)·북한(2개) 순이었다.

'해커'의 가면 뒤에 숨은 분쟁이 늘어나면서 국제사회도 긴장하고 있다. 2016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커지는 러시아 등의 사이버 위협에 맞서 '사이버 공간은 전쟁 영역'이라고 공식 인정하기도 했다. 2013년 NATO 사이버방위센터(CCDCOE)의 '탈린 메뉴얼'은 '비례성'과 '필요성' 요건이 충족된다면 사이버 보복도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무법지대라는 온라인 공간 특성을 노려 국가간 분쟁이 커질 우려가 있다"며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맞춰 국가간 합의를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