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불인(不仁)과 마비

머니투데이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디캠프·프론트원 전 센터장 2022.03.28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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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얼마 전 한 신부님의 강론에서 들은 이야기다. 한의학에서는 신체의 마비를 동반하는 병을 '불인'(不仁)이라고 부른다. 불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仁)하지 못한(不) 것'이다. 仁이라는 문자는 사람(人) 2명(二)을 합한 것으로 친(親)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공자는 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불인'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 친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몸에 마비가 온다니 무섭지 않은가. 몸의 병은 결국 마음의 결핍에서 온다는 가르침으로도 풀이된다.



여기서 드는 생각 하나는 개인이 소속된 법인, 나아가 사회에도 적용해볼 수 있겠다는 것이다. 집단이 다른 집단을 사랑하지 않는 게 사회마비현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스타트업 내부와 생태계에 적용해보면 친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친하지 않으면 병이 생길 수 있는 관계로 스타트업의 성공과 실패, 규제와 혁신,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꼽을 수 있겠다.



우선 성공과 실패는 항상 함께 존재한다. '시작' '시도' 없이는 개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단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경우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첫 번째 라운드에서 투자받은 3만6897개 기업을 추적분석한 결과 이후 추가 펀딩을 받았거나 인수·상장한 기업은 1만908곳으로 29.5%에 불과했다. 벤처 호황기였는데도 나머지 70%는 실패한 것이다.

여기서 70%의 실패를 수용하지 못하면 나머지 30%의 성공도 없기 때문에 실패와 성공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미국발 금리인상은 성공비율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적극 시행된 스타트업 지원정책은 이번 정부에서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0%와 70%가 소통하지 않으면 결국 마비가 온다. 100의 시작과 시도 없이는 30의 성공도 70의 실패도 없다.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기에 친한 관계여야 한다.

규제와 혁신도 마찬가지다. 논리적으로 보면 규제의 존재는 혁신을 유발한다. 규제가 없다면 혁신할 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규제와 혁신이 조금 편한 관계가 돼야 한다. 형해화한 규제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인정하고 새로운 발전을 끌어내야 한다. 특히 기술적으로 급격히 발전하는 사회에서는 선험적으로 정의(定義)된 정의(正義)와 상식(常識)이 오히려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 물론 모든 혁신이 정의가 아니듯 모든 규제 역시 불의는 아니다. 다만 최근 기술의 급격한 진보는 한 국가를 넘어 전 지구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기에 우리만의 고유문화와 관습, 규제를 지켜내기에는 지구가 너무 평평해진 상황이다.


결국 현재의 규제를 지켜내려는 노력이 혁신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인프라를 통해 기술과 사람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기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관계도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유행처럼 퍼지지만 아직까지 국내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스타트업 지원은 거의 사회공헌 활동의 일부로 여긴다. 당연히 친한 관계가 아니다. 대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스타트업의 새로운 시도와 무모함이 필요하지만 아직 대기업과 공기업의 스타트업 관련 부서는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부서 소속이 아니라 경영지원, 혹은 사회공헌부서 소속의 생색내기 또는 혁신연극의 소품으로 활용되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 CVC에 부과된 다양한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규제는 과감히 풀어서 둘 사이가 진정 친한 관계가 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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