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불법 비디오의 시대는 이제 그만

머니투데이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2022.02.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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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불법 비디오의 시대는 이제 그만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사전심의가 사라진 지금은 어색한 옛 광고지만 OTT 시대에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최근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인 OTT가 성장하며 OTT 영상물에 대한 '자율등급분류' 제도가 정책 쟁점으로 부상했다. OTT의 성장으로 등급분류 물량이 급격히 늘자 영상물 공급에 병목현상이 나타났다. 사전등급분류의 비효율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율등급분류 제도 도입이 시도됐지만, 부처 간의 이해관계 등을 이유로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지금 제도에서 OTT 영상물은 비디오물로 규정돼 사전등급분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인터넷에 공개되는 무료 영상엔 이런 의무가 부여되지 않고, 오직 '대가를 받고' 제공되는 영상에만 과거 '비디오테이프'에 적용되던 규율이 이어진다. 이런 규율은 합당한 것인가?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첫째, 사용자에게 '대가를 받는다'는 사실이 규제의 합당한 근거가 되는가이다. 이 기준은 '비디오'라는 매체를 규정하는 정의에서 도출된 것이고, 이는 과거에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영상의 유통을 '불법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국가가 영상을 통한 콘텐츠와 메시지의 전파의 경로를 '제한'하는 의도가 담긴 제도였다는 점이다. 사전 심의 제도는 1996년 이후 이어진 위헌 판결을 근거로 성격을 바꿔왔고, 지금은 사용자가 자율적으로 영상물 시청을 선택할 수 있도록 '등급'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째, 이러한 '정보' 제공을 공공기관이 독점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방송사업자는 스스로 등급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자율등급분류를 할 수 있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2021년 6월 기준으로 461개사에 달한다. 영상뿐 아니라 게임, 웹툰도 자율성에 기초한 등급 분류 제도를 운영 중이다. 유독 OTT 서비스에만 자율성을 허락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망치를 들면 모든 사물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OTT에 대해 아직도 비디오·방송과 같은 과거의 규제 프레임을 전제로 접근하려는 시각이 이와 다르지 않다. 사전등급분류제도는 하나의 상징일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영상 콘텐츠 산업을 바라보는 시야가 검열 폐지 이전의 규제적 사고와 '공적 기구'로서 방송이라는 이념이 우선시 되는 사고의 계보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상징 말이다.

OTT 서비스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새롭게 탄생한 영상 콘텐츠 생산과 소비 양식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과거의 '불법 비디오' 규정과 같은 규제 틀에 가두거나, '방송'의 틀에 가둬 해석하려는 것은 미래를 과거의 시각으로 재단하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한류 콘텐츠의 출발점은 사전 심의와 같은 규제를 걷어내고,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와 영상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위한 노력도, 산업의 혁신을 누르는 관행적 사고의 틀을 깨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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