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콩밥 먹일 순 없잖아요" 자식에 맞고 사는 부모들, 매년 2000명

머니투데이 홍재영 기자, 김성진 기자, 조성준 기자, 양윤우 기자 2022.03.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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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코로나 그레이존(상)] ③가족이라는 이름으로…음지로 들어간 가정폭력

편집자주 코로나19로 공공이 분담하던 역할이 제기능을 못하면서 가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거리두기와 비대면 일상화에 따른 부작용도 커졌다. 매 맞는 아이, 학대당하는 부모가 있어도 주변에서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홀로 살던 누군가 죽어도 알아채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코로나19가 만든 사각지대, 이른바 '코로나 그레이존'에 갇힌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짙어진 우리 사회의 그늘을 짚어본다.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서울에 사는 홍철수씨는(63세 가명) 지난해 6월 20세 아들에게 폭행을 당해 팔이 부러졌다. 수술을 요하는 상황이지만 충격이 너무 컸던 탓에 마음을 추스리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잠시 미루고 있다.

홍씨는 중소기업에 다니다 얼마전 은퇴했다. 은퇴 전까지는 업무 특성상 지방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는 일이 많아 그동안은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다.



은퇴 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데다 코로나19로 아들도 집에서 뒹굴거리며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 아들에게 훈계했다. 이에 돌아온 것은 격분한 아들의 폭행이었다.

문제는 이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는 부모가 많다는 점이다. A씨는 "이런 모습을 보고 아내도 어찌할 줄 몰라 바라만 보고 있었다"며 "저도 어디서부터 바로잡아 나가야할지 몰라 수술도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존속범죄 2020년 2609건 달해…"부양 스트레스, 학대로 표출"
지난 5년간 발생한 존속범죄 건수. 존속범죄는 2017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진=김지영 디자인기자지난 5년간 발생한 존속범죄 건수. 존속범죄는 2017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진=김지영 디자인기자
코로나19 이후 존속 폭행도 늘어나는 추세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존속폭행과 상해, 살인 등 존속범죄는 2020년 2609건 발생했다.전 해인 2019년(2428건)에 비해 7.5% 가량 늘어났다. 2017년에 비해서는 약 28.3% 증가한 수치다. 2021년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오면서 소폭 감소했으나 그 이후로 증가추세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건 폭행이다. 존속폭행은 2020년 1851건으로 전체 존속범죄의 70.9%를 차지했다. 2019년 1661건에서 11.4% 가량증가했다. 수위 높은 존속 범죄도 종종 발생한다. 2020년 존속폭행치사 사건이 23건 발생했다.


존속살인 범죄도 2017년 25건, 2018년 44건, 2019년 35건, 2020년 28건 발생해 매년 수십 명의 부모가 자식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존속범죄는 일반 범죄보다 처벌이 강하다. 단순 폭행은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지만 존속 폭행은 5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살인도 일반 살인은 법정형의 하한선이 징역 5년이지만 존속살인은 징역 7년이다.

자식 처벌 원치 않는 부모들…"자식에게 피해 줄 수는 없어"
전문가들은 신고된 건수만 2000여건이지 실제로는 그 수가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존속폭행이 발생해도 '사회적 체면때문에' 또는 '처벌을 원치 않아서' 등의 이유로 부모들이 신고를 꺼려하는 탓이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존속폭행 역시 단순폭행과 동일하게 피해자의 동의 없이 처벌이 불가능한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르신들은 일반적으로 '내가 피해를 받더라도 자녀한테 피해가 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며 "최근 '학대' 개념에 대한 인식이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많이 퍼졌지만 그래도 자녀의 앞길을 막을까 폭행을 당하고도 참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존속 학대 증가가 사회적으로 자녀들의 부양 부담이 커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 비해 은퇴시기는 빠르고 부모를 부양해야할 자녀들은 취업이 어려운 게 최근의 현실이다. 이 가운데 부양에 대한 책임을 자식들이 오롯이 져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폭력으로 갈등이 표출되기도 한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존속 학대는 전통적인 부양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그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부양 대상인 부모를 향해 폭력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해 심화되는 경향은 보인다"고 분석했다.

해마다 존속 폭행의 수는 늘어가지만 피해자 보호 대책은 부실하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접근금지처럼 자식을 부모와 분리하는 임시조치가 마련됐지만 가해자가 자립할 형편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며 "자녀가 나갈 수 없다는 걸 아는 부모가 스스로 나가기를 선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쉼터가 여성 전용인 경우가 많아 노인 남성이 자녀에 폭행당하면 길거리로 내몰리는 일도 있다. 박 부장은 "쉼터 시설이 주로 여성 피해자를 위한 경우가 많아 부부가 갈라지는 일도 생긴다"며 "남성 피해자들은 노숙인 쉼터 등을 찾아야 할 수도 있고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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