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씨는 최근에는 이혼 생각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상황이 나빠졌기 때문. 이 씨는 "요즘에는 나가서 식당 서빙 자리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고민하지만 요즘에는 그럴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제주도에 사는 A씨의 경우도 아내가 처벌을 원치 않아 사실상 방치됐다가 결국 살인을 저지른 사례다. A는 2020년 아내를 때려 재판에 넘겨졌지만 재판 과정에서 아내가 '처벌을 원치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징역형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A씨의 폭행은 지속됐다. A씨는 지난해 11월 아내가 '왜 집에 늦게 들어오느냐'고 항의하자 화가 나 흉기를 집었고, 아내가 현관을 열고 도움을 요청하자 흉기로 찔렀다.
/사진=뉴스1
폭력이 반복돼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중간에 개입하지 못해 가정폭력이 강력범죄로 커지는 사례는 쌓인다. 지난해 9월에 서울 강서구에서는 49세 남성 B씨가 아내를 장인 어른이 보는 앞에서 흉기로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내는 결혼 생활 동안 B씨의 폭행을 당했지만 처벌보다 이혼을 원했다. B씨는 이혼 소송 취하를 요구했지만 아내가 거부하자 화가 나 아내를 살해했다. B씨는 지난 16일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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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피해자가 심하게 다쳤다면 상해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개시할 수도 있다. 아울러 지난해부터는 경찰이 피해자 신청없이도 접근금지 등 가정폭력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피해자 동의 없이 가해자를 수사하거나 임시조치를 내리기에는 경찰이 느끼는 부담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은 부모와 자식 간 사생활의 측면이 있지 않나"라며 "그러다보니 피해자의 의사 없이 경찰 자체 판단으로 수사를 개시하거나 임시조치를 내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강력범죄 어떻게 막나..."피해자 안전 확보 후 처벌 의사 물어야"
/사진=이지혜 디자이너
그렇다고 반의사불벌 조항을 폐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가해자에 연민을 느끼거나 생계를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고가 처벌과 직결되면 신고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처벌 의사를 묻기 전 피해자가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정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폭력범죄보다 훨씬 심각한 범죄"라며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냉각기간을 거치고, '내 삶이 안전하다' '더 이상 가해자가 날 폭행할 수 없다'는 상황 요건에 대한 신뢰를 얻으면 처벌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