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수십년 맞아도...'처벌 말아요' 한마디에 손발 묶이는 경찰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조성준 기자, 양윤우 기자, 홍재영 기자 2022.03.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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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코로나 그레이존(상)] ④가족이라는 이름으로…음지로 들어간 가정폭력

편집자주 코로나19로 공공이 분담하던 역할이 제기능을 못하면서 가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거리두기와 비대면 일상화에 따른 부작용도 커졌다. 매 맞는 아이, 학대당하는 부모가 있어도 주변에서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홀로 살던 누군가 죽어도 알아채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코로나19가 만든 사각지대, 이른바 '코로나 그레이존'에 갇힌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짙어진 우리 사회의 그늘을 짚어본다.

2010년 결혼한 이미소씨(가명)는 몇년 전부터 남편과의 이혼을 생각해왔다. 남편의 폭력이 반복되면서다. 경찰에 신고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남편의 말을 믿고 용서를 해준 것이 십여차례에 달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남편의 폭력은 계속됐다.

이 씨는 최근에는 이혼 생각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상황이 나빠졌기 때문. 이 씨는 "요즘에는 나가서 식당 서빙 자리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고민하지만 요즘에는 그럴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가정폭력 신고 중 검거는 단 20%...중도 개입이 어려운 경찰들
남편에 수십년 맞아도...'처벌 말아요'  한마디에 손발 묶이는 경찰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는 21만8669건에 달한다. 하지만 모든 가정폭력이 처벌로 이어지진 않는다. 현행법상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정식 수사를 개시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기 때문이다. 2018~2020년에 가정폭력 신고 중 피의자가 검거된 건수는 16.8%~20.8% 수준이었다.

제주도에 사는 A씨의 경우도 아내가 처벌을 원치 않아 사실상 방치됐다가 결국 살인을 저지른 사례다. A는 2020년 아내를 때려 재판에 넘겨졌지만 재판 과정에서 아내가 '처벌을 원치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징역형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A씨의 폭행은 지속됐다. A씨는 지난해 11월 아내가 '왜 집에 늦게 들어오느냐'고 항의하자 화가 나 흉기를 집었고, 아내가 현관을 열고 도움을 요청하자 흉기로 찔렀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 내 폭력인 만큼 피해자가 가해자에 생계를 의존하는 일이 많다"며 "처벌을 원치 않는 일이 많은데 그러면 수사 자체를 시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사진=뉴스1
폭력이 반복돼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중간에 개입하지 못해 가정폭력이 강력범죄로 커지는 사례는 쌓인다. 지난해 9월에 서울 강서구에서는 49세 남성 B씨가 아내를 장인 어른이 보는 앞에서 흉기로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내는 결혼 생활 동안 B씨의 폭행을 당했지만 처벌보다 이혼을 원했다. B씨는 이혼 소송 취하를 요구했지만 아내가 거부하자 화가 나 아내를 살해했다. B씨는 지난 16일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물론 피해자가 심하게 다쳤다면 상해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개시할 수도 있다. 아울러 지난해부터는 경찰이 피해자 신청없이도 접근금지 등 가정폭력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피해자 동의 없이 가해자를 수사하거나 임시조치를 내리기에는 경찰이 느끼는 부담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은 부모와 자식 간 사생활의 측면이 있지 않나"라며 "그러다보니 피해자의 의사 없이 경찰 자체 판단으로 수사를 개시하거나 임시조치를 내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강력범죄 어떻게 막나..."피해자 안전 확보 후 처벌 의사 물어야"

/사진=이지혜 디자이너/사진=이지혜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 말이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건 가해자의 행위가 잘못되지 않았단 게 아니라 가해자가 처벌받는 게 소득 단절 등 가정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그렇다고 반의사불벌 조항을 폐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가해자에 연민을 느끼거나 생계를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고가 처벌과 직결되면 신고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처벌 의사를 묻기 전 피해자가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정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폭력범죄보다 훨씬 심각한 범죄"라며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냉각기간을 거치고, '내 삶이 안전하다' '더 이상 가해자가 날 폭행할 수 없다'는 상황 요건에 대한 신뢰를 얻으면 처벌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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