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방'. 왼쪽이 국보 78호, 오른쪽이 83호. /사진=국립중앙박물관(원오원아키텍츠)
하지만 '사유의 방'의 핵심은 역시 두 반가사유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미소와 자태를 최적의 상태로 감상하기 위한 공간을 만든 게 '사유의 방'이다. 이곳을 설계한 최욱 건축가는 지난 4일 '찐터뷰'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 공간에 대해 "오로지 반가사유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오른쪽에는 옛 지정번호 기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있다. 단아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조각. 7세기 초반 신라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세련된 20대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얼굴에 힘이 들어간 작품이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국보 78호는 약간 가냘프다. 6세기 중반 당시 인체조각의 포인트다. 섬세하다. 7세기 전반(국보 83호)으로 오면 인체 비례가 4~5등신, 아동형이다. 머리가 크고 상체가 작다. 얼굴도 성인의 얼굴도 아니고 10세 전후의 얼굴이다. 그때는 그게 가장 이상적인 얼굴이라고 조각할 때 생각했다. 국보 78호의 얼굴이 20대 청년의 얼굴이면, 국보 83호는 10세 아동의 얼굴이다. 웃을 때도 입술을 약간 내민, 어린 아이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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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78호의 화려한 보관 장식은 사실 페르시아 양식이다.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일본까지 전해지는 양식이다. 국보 83호의 보관은 반원을 세 개 이어붙여 만든 모양이다. 우리나라 밖에 없다. 특히 신라 반가사유상에만 보이는 양식이다. 일본 것(고류지 목조반가상)도 그래서 신라에서 가져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신라에서 일본으로 갔다는 게 기록에도 그렇게 남겨져 있다. 나무도 우리나라 소나무 계열이다."
민 관장은 대학생 때 처음 반가사유상을 처음 보고 "어떻게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지?"라고 생각하며 신기했었다고 회고했다. 조각상이 사람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
그는 "박물관에 들어와 1992년도에 삼국시대 불교조각전을 했었다. 20대 시절이다. 그때 내가 담당이었다. 두 작품이 똑같이 웃고 있는데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했다"며 "그때는 국보 78호의 미소를 마음에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보 78호가 선이 좀 날카롭다. 얼굴에 눈썹, 코, 등 선이 많다. 광대뼈도 약간 튀어나와 있다"라며 "그 미소가 약간 날카로우면서 선명하고 세련됐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민 관장은 "이후 30대가 되니까 아무 생각없이 해맑고 천진난만한 국보 83호의 미소가 훨씬 가슴에 와닿았다"며 "천진난만해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민 관장은 "요즘은 국보 78호의 미소가 또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다. 국보 78호 쪽이 얼굴이 좀 둥글넙적하다. 여유있고 너그러운 미소"라며 "물론 둘 다 완벽한 조각"이라고 말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볼륨 넘치는 옷의 주름, 미소짓는 아이같은 얼굴이 압권인 작품/사진=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