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는 정의인가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2.01.17 06:00
글자크기

[오동희의 思見]

지난 11일 국회를 통과한 '공공부문 노동이사제(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크다.

정치권의 명분은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워치독(Watch Dog: 경비견) 역할을 노동이사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노동계의 표심에 기댄 여야 대권주자들의 '표퓰리즘'에 국회가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시장 경제체제 하에서 기업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도입에 반대할 사람들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사제 도입의 과정과 절차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는 우리 현실을 도외시한 채 심도 있는 논의가 배제됐다는 점이다.



우선 우리의 단일 이사회 제도와 이 제도를 적극 도입한 유럽 각국의 복수 이사회 제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 무시됐다.

약 6년전 11월초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 버스 한대가 멈춰섰다. 그 버스에는 다른 표식 없이 'ASML'이라는 알파벳 네글자의 팻말만이 붙어 있고 10여명의 외국인이 차에서 내렸다.



나중에 알게 된 이들의 정체는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업체인 네덜란드 ASML의 경영이사회(Board of Management)와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 멤버들이었다. 유럽과 미국의 다수 기업의 이사회가 이처럼 둘이라는 것도 이 때 처음 알았다.

경영이사회가 EUV 장비 개발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 가능성을 의심한 감독이사회가 실제 삼성전자가 EUV 장비를 구매할 의사가 있는지 등을 타진하기 위해 양 이사회 멤버들이 함께 삼성전자를 방문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처럼 경영이사회는 회사의 최고경영기구로서 회사의 전략적 방향, 회사 예산의 계획 및 확정, 자원의 안배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에 비해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회를 감독하며 회사경영에 대한 자문을 한다. 유럽은 이 감독이사회에 근로자추천 이사제 등을 도입하고 있다.


독일의 지멘스의 경우 감독이사회의 절반이 근로자 추천 대표다. 감독이사회 최종 의사결정 과정에서 찬반이 동수가 될 경우 대주주가 추천한 감독이사회 의장이 결정권을 쥔 형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 이사회 제도다. 이 이사회에 노동이사가 직접 참여할 경우 경영활동 건건이 노조가 간섭하는 것은 물론 이해충돌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회사의 이익과 노조의 이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유럽에서 승인이 무산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의 경우도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유럽경쟁국 등을 찾아다니며 매각반대의 목소리를 냈고, 이것이 불승인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회사와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는 노조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 처럼 회사별로 노조보다 산업별 노조로 구성돼 개별 기업사안에 대한 직접적 이해충돌이 적어 감독이사회에 노동이사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신뢰가 부족한 우리 노사문화의 현실에서 이 제도를 도입할 때는 시끄럽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심도 있는 상호 논의가 필수적이다. 천천히 굳힌 콘크리트가 더 단단하고 오래 가듯 제도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쉽게 무너지지 않고 100년 이상 오래 가는 틀이 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