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찍읍시다, 대통령처럼 생겼잖아요"…그 끝은 어땠을까

머니투데이 이상배 경제부장 2022.01.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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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워런 하딩 제29대 미국 대통령/ 사진=미 백악관워런 하딩 제29대 미국 대통령/ 사진=미 백악관


#1. 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지도부는 워런 하딩 상원의원을 대선 후보로 점찍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대통령처럼 생겨서.

그는 남자답고 위엄있는 외모를 가졌다. 이목구비는 뚜렷했고 눈썹은 짙었다. 별명이 '그리스 조각상'이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공화당 중진들은 하딩을 불러놓고 물었다. 대선 후보로 추대하려고 하는데 혹시 사생활에 문제가 있느냐고. 하딩은 한참을 생각한 뒤 대답했다. "친구의 부인과 바람을 피우고 있고, 서른살 어린 여성과의 사이에 혼외 딸을 하나 갖고 있어요. 그게 전부요."

그리곤 잠시 후 덧붙였다. "참 술을 좋아해서 자주 마십니다." 참고로 이 당시 미국에선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하딩을 대선 주자로 내세웠다. 마땅히 대안이 없었다. 그들은 재빨리 문제(?)를 수습했다. 하딩의 유부녀 애인에게 돈을 쥐여주고 가족과 함께 장기간 아시아로 여행을 떠나도록 했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국민들의 눈엔 하딩의 근엄하고 신사적인 이미지만 보였다. 외모 덕분인지 특히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이 압도적이었다. 결국 하딩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21년 제29대 미국 대통령에 오른 하딩은 2년 뒤 심장마비에 걸려 재임 중 세상을 떠났다.

#2.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꼽으라면 반드시 3위권에 들어가는 인물이 하딩이다. 그는 애당초 대통령이 될 재목이 아니었다. 무능했고 정치적 야심도 없었다. 본인 스스로 "나는 대통령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 직을 맡아선 안 된다"고 했을 정도다.


재임 중 기자가 한 법안에 대해 질문하자 하딩은 "난 이런 세금 문제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그 법안은 '공식적으로' 하딩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것이었다.

다른 기자가 "요즘 유럽의 정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하딩은 "나는 유럽 문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그나마 솔직한 걸 장점으로 봐야할까.

일을 잘 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않은 하딩이었지만 노는 건 진심이었다. 백악관에 친구들을 불러 밤새 불법 위스키를 마시면서 포커를 치기 일쑤였다. 여성 편력은 말도 못할 정도였다.

본인이 능력이 안 되니 국정은 모조리 측근들에게 맡겼다. 이런 대통령에 측근들이라고 훌륭했으랴. 하루가 멀다 하고 내각의 비리 스캔들이 터졌다. 내무장관이 정부의 유전지대를 친구들에게 빌려주고 뇌물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측근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측근의 전횡을 막을 수 있었겠나. 연방정부가 썩어가는 동안 나라 전체엔 부패가 들끓었다.

#3. 사람의 외모만 보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선 '하딩 효과' 또는 '하딩의 오류'라고 부른다. 기업이나 학교의 면접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게 이성일 땐 더하다. 면접위원단을 남녀 가운데 한 가지 성별로만 꾸려선 안 되는 이유다.

직원 한 명 잘못 뽑는 것까진 괜찮다. 그런다고 회사가 망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잘못 뽑은 대상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함량 미달의 대통령이 수 년 동안 권좌에 앉아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하딩은 똑똑히 보여줬다. "단 한 명의 대통령을 미국 역사에서 지울 수 있다면 누굴 지우고 싶으냐"는 물음에 가장 많은 미국 역사학자들이 하딩을 꼽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대개 총선은 정권에 대해 심판 또는 재신임을 하는 '회고적 투표'의 성격이 강하다. 그 반대가 '전망적 투표'다. 후보의 능력과 비전, 가치관 등을 놓고 국가의 운명을 맡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대선은 전망적 투표에 가까웠다. 이번엔 어떨까. 후보의 이미지보다 미래를 보고 표를 던져야 앞으로 5년 그나마 덜 후회하지 않을까.

"이 사람 찍읍시다, 대통령처럼 생겼잖아요"…그 끝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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