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밀었다, 그 큰 트럭을"...거짓말 드러나자 '먹튀'한 희대의 사기꾼[그 who]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21.12.1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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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끝내 머스크가 되지 못한 '니콜라' 창업주 트레버 밀턴

편집자주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던 화제의 인물, 그 후를 조명합니다.

트레버 밀턴 니콜라 창업주가 사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사진=로이터트레버 밀턴 니콜라 창업주가 사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사진=로이터


지난해 9월 뉴욕 증시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 공매도투자 전문업체 힌덴버그 리서치(이하 힌덴버그)가 '니콜라: 어떻게 거짓말로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와 제휴했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에는 '제2의 테슬라'로 평가받으며 나스닥 시장에 입성한 수소전기차 스타트업 '니콜라'의 사업성과가 모두 조작됐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특히 2018년 1월 니콜라가 유튜브·페이스북 등에 공개한 '움직이는 니콜라 원' 동영상이 조작됐다는 주장은 시장에 큰 파장을 불렀다.



영상에선 대형 수소전기 트럭이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언덕 위로 트럭을 끌고 올라가 아래로 굴린 것이라는 전직 직원들의 증언이 나왔다. 영상을 촬영한 경사 3도, 길이 3㎞의 유타주 그랜츠빌 남쪽 모몬트레일에선 자동차를 그냥 밀어 굴려도 최대 시속 90㎞ 속도로 내려간다고 힌덴버그는 밝혔다.

니콜라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 트레버 밀턴은 보고서가 공개된 지 10일 만에 사의를 밝히고 꽁무니를 뺐다. 지금은 검찰에 기소돼 법정을 오가는 신세가 됐다.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희대의 사기꾼' 밀턴 때문에 미국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양치기 소년→양치기 아저씨'…사기와 소송의 연속
니콜라가 지난 2018년 1월 공개한 '니콜라 원' 영상 속 장면 /사진=니콜라니콜라가 지난 2018년 1월 공개한 '니콜라 원' 영상 속 장면 /사진=니콜라
트레버 밀턴은 올해 39세(1982년생)로 미국 유타주에서 태어났다. 사탕·과자 등을 구입해 학교 친구들에게 비싸게 파는 등 학창 시절부터 사업 수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적이 좋지 않아 전문대학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했다.

밀턴은 27세 되던 해인 2009년 첫 창업한 이후 2014년 니콜라를 설립할 때까지 수차례 회사 설립과 매각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말이 모두 좋지 않았다.

첫번째 회사는 경보기 판매업체 '세인트조지 시큐리티 앤 알람'으로 30만달러(3억6000만원)에 매각했는데, 인수자로부터 사업실적이 부풀려졌다고 항의를 받았다. 지분 50대 50으로 공동 투자했던 동업자에게 매각 대금의 절반이 아닌 10만달러(1억2000만원)만 건넨 것도 문제가 됐다. 경보기 업체 매각 직후 중고차를 판매하는 온라인 광고회사를 설립했지만 실패했다.


세번째로 창업한 회사는 대체에너지 자동차 사업을 하는 '디하이브리드(dHybrid)'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디젤엔진을 압축천연가스(CNG) 엔진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가진 '마이크 슈라우트'와 손을 잡았고, 대형 운송회사 '스위프트'로부터 200만달러(23억8000만원) 투자도 받았다. 하지만 디하이브리드는 스위프트에 약속했던 픽업트럭 인도에 실패했다. 어렵사리 5대만 인도했는데 트럭 성능이 형편없었다. 스위프트는 밀턴이 공급 계약을 어겼을 뿐 아니라 투자비용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스위프트로부터 받은 투자비가 고갈될 무렵 밀턴은 디하이브리드를 매각해 돈을 끌어오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자신이 납품한 트럭으로 스위프트가 연료비 38%를 절감하고 있으며 공급계약 규모가 3억달러에 달한다고 부풀렸다. 디하이브리드를 사겠다고 나섰던 서스테이너블 파워그룹은 한 달 만에 밀턴에게 소송을 냈다. 역시나 제품 성능이 부족하고 사업실적이 과장돼 있다는 이유였다.



"거짓말로 거짓말을 덮었다"…GM·보쉬·한화도 깜빡 속아
"언덕에서 밀었다, 그 큰 트럭을"...거짓말 드러나자 '먹튀'한 희대의 사기꾼[그 who]
디하이브리드가 소송에 휘말리자 트레버 밀튼은 2012년 사업 파트너들과 결별하고 '디하이브리드시스템스'로 이름만 바꿔 회사를 다시 차린다. 재창업한 후에도 밀튼의 사기행각은 계속됐다. 폐업한 회사인 디하이브리드의 압축천연가스 엔진사업 경험과 실적을 앞세웠고, 회사 설립시기까지 조작했다.

2년 만에 디하이브리드시스템스는 '워팅턴 인더스트리즈'에 매각됐다. 매각가는 1990만달러(236억원). 당시에도 밀턴은 제품 기술 결함을 숨기고 사업 성과는 과대 포장했는데, 어렵사리 매각 대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돈으로 2014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창업한 회사가 바로 니콜라다. 에디슨과 함께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칭송받는 니콜라 테슬라에서 이름 땄다. 앞서 전기차 사업을 시작한 일론 머스크가 니콜라 테슬라의 성인 테슬라를 회사명으로 지은 것으로 보고, 밀턴은 이름인 니콜라를 선택했다.



밀턴은 워팅턴에 회사를 매각한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니콜라를 띄웠다. 처음엔 압축천연가스 엔진 기술을 자랑했지만, 2016년 8월 수년간 공들였던 이 기술을 포기하고 돌연 수소전기차로의 사업 전환을 선언했다. 15분 동안 충전하면 3600㎏ 무게 트럭을 유해가스 없이 1600㎞ 달릴 수 있는 '니콜라 원'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니콜라 수소차량에 수소연료 주입하는 모습/사진=니콜라니콜라 수소차량에 수소연료 주입하는 모습/사진=니콜라
이 획기적인 니콜라 원이 달리는 영상에 지자체와 대기업이 모두 속았다. 트럭 조립을 위해 온갖 속임수로 곳곳에서 부품을 조달해 라인업을 만들었다는 건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니콜라는 독일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를 비롯해 전 세계 연료전지 등 수소 관련 제조사들과 합작 계약을 맺었다. 애리조나주 주지사는 "미래 수소 전기차 생산 본부가 애리조나로 온다"며 자신의 업적처럼 발표를 하기도 했다.

밀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9년 4월에는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 가동하겠다고, 11월에는 시장을 바꿔놓을 배터리 기술을 공개하겠다고 각각 발표했다. 미국 대표 자동차회사인 GM, 한국 기업인 한화 등이 여기에 속아 거액을 들여 니콜라 지분을 사들였다.



사기행각 들통나자 미련없이 사표…주가 90% 폭락
지난 7월 변호인과 뉴욕 연방법원을 나서고 있는 트레버 밀턴/사진=블룸버그지난 7월 변호인과 뉴욕 연방법원을 나서고 있는 트레버 밀턴/사진=블룸버그
니콜라는 실체가 없는 껍데기 수소전기차를 앞세워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인수합병특수목적회사(SPAC) 합병을 통한 방식을 선택했다.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니콜라의 증시 입성에 주식 투자자들이 몰려 들었다. 상장 직후 주가가 96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기업공개(IPO)가 이뤄진 후 전문가들의 검증이 본격화됐다. 시장에선 "미국 전역에 700개 수소충전소를 설치하겠다", "하루 1000㎏ 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킬로그램당 16달러인 수소생산단가를 3달러로 낮췄다" 등 밀턴이 쏟아낸 발언의 실체가 없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블룸버그통신은 니콜라가 발표한 자동차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밀턴은 "안전을 위해 공개하지 않았지만 자동차 부품이 현장에 있었다"고 맞섰다. 하지만 이 해명은 힌덴버그의 니콜라 보고서로 3개월만에 거짓말로 판명됐다.



공매도 세력의 집중 포화에 적극 반박에 나설 것으로 보였던 밀턴은 10일 만에 사의를 밝혔다. "언덕에서 트럭을 굴렸다"는 지적에 "우리는 니콜라 원이 움직였다고 했지 주행했다고 하지 않았다"는 황당 답변만 남긴 채.

공매도 보고서와 밀턴의 사임으로 니콜라 주가는 폭락했다. 지난해 6월 상장 직후 90달러를 웃돌던 주가가 석달 만인 9월 20달러대로 떨어졌다. 올 12월17일 현재는 9.98달러로 최고점 대비 약 90% 빠졌다. 니콜라 주식을 매입한 '서학개미' 한국 개인 투자자들도 큰 손실을 봤다.

반성없는 밀턴…사기꾼 떠난 니콜라는 고군분투
니콜라의 수소 트럭/사진=니콜라니콜라의 수소 트럭/사진=니콜라
밀턴은 니콜라를 떠나는 조건으로 주식 9160만주만 보유하고 나머지는 포기하기로 회사와 합의했다. 당초 밀턴은 2000만달러(237억원)의 컨설팅 비용을 따로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밀턴은 사임 이후 12월 현재까지 3억1700만달러(3800억원) 규모 주식을 처분했다. 올 6월엔 수백억원의 퇴직금을 챙기려다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미국 연방검찰은 밀턴이 CEO 재직시절 니콜라 주가를 띄우려고 투자자를 기만한 혐의를 들어 기소했다. 밀턴은 거주제한·투자자 접촉금지 조건 등으로 보석금 1억달러(1200억원)를 내고 풀려나 자신이 소유한 유타주 목장에 머물고 있다. 그는 연방판사에게 검찰 기소가 잘못됐다며 기각해 줄 것을 요청했다 거절당하기도 했다.

사기꾼 창업주가 떠나고 새 CEO 마크 러셀이 이끄는 니콜라는 홀로서기를 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시한 1억2500만달러 벌금에 합의하고 각종 조사와 민사소송 등을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공매도 보고서 직후 니콜라가 망할 것이라는 부정전망도 많았지만 독일 보쉬·한국 LG에너지솔루션 등 부품업체와 계약을 맺는 등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엔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수소트럭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시범 테스트 중인 제품들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상용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니콜라가 '제2의 테슬라'로 부상할 지, '제2의 테라노스(채혈키트로 수백가지 질병 진단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스타트업으로 현재 사기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로 추락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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