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안하고 다른 여성과 살다 사망…사실혼 인정, 연금까지 받는다

머니투데이 김효정 기자 2021.12.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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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판례씨]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법적 혼인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더라도 두번째 배우자와 가족으로서의 공동생활을 유지해왔다면 사실혼 관계가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가정법원은 최근 A씨가 검사를 상대로 청구한 사실상 혼인관계 존재 확인의 소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A씨는 망인과 10여년 전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아왔다. 망인은 A씨에게 아파트를 유증한다는 유언공증서를 작성하고 약 1년 후 사망했다.

그러나 망인에게는 약 20년 전 혼인신고를 한 법률상 배우자 B씨가 있었다. 망인은 B씨와의 결혼 생활 약 4년 만에 집을 나와 사망할 때까지 A씨와 생활해왔다.



A씨는 법률상 부부인 B씨와 망인이 사실상 이혼 상태이므로 자신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검사를 상대로 사실혼 관계 확인을 청구했다. 국민연금법 등은 사실상의 배우자를 수급권자로 규정하고 있어 사실혼 관계가 인정될 경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자는 배우자가 사망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검사에게 사실혼 관계 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1심은 B씨가 사실상 이혼 상태라거나 혼인관계가 사실상 해소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A씨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일정한 직장이 없던 상태에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말도 없이 집을 나가 B로서는 망인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고, 망인이 협의이혼을 요구한 뒤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며 두 사람이 이혼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B씨가 자녀에게 망인이 외국에 있다고 거짓말하며 선물을 보내는 등 자녀가 아버지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했고, 자녀의 혼사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 혼인신고도 유지한 점 등에 비춰볼 때 두 사람의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봤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와 망인의 주민등록내역, 가족으로서의 공동생활 모습을 종합하면 사실혼 관계를 형성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아울러 망인과 B씨는 별거 후 망인이 사망할 때까지 어떤 교류도 하지 않았고, B씨가 법정에 'A씨가 망인의 장례식에 자녀를 보내달라는 문자를 받고 사망사실을 인지했다. 남편이라는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이기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할 이유가 없고 자녀에게도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의미밖에 없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제출한 점에 비춰 두 사람은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따라 A씨와 망인의 사실혼 관계는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필요가 있고 국민연금법상 사실혼 배우자로서 유족연금 수급권도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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