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단 인사 늦어진 이유…처절한 목소리&냉혹한 현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12.0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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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

2022년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 주목할 인물들. 사진 왼쪽부터 김기남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부회장, 한종희 삼성전자 세트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 박학규 삼성전자 세트부문 경영지원실장(CFO) 사장, 김수목 삼성전자 세트부문 법무실장 사장2022년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 주목할 인물들. 사진 왼쪽부터 김기남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부회장, 한종희 삼성전자 세트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 박학규 삼성전자 세트부문 경영지원실장(CFO) 사장, 김수목 삼성전자 세트부문 법무실장 사장


지난 3일 정도로 예상됐던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사장단 인사가 7일로 늦어진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7일 삼성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인사 검증 자료들은 평년보다 일찍 정리돼 인사팀에 보고됐다. 이런 이유로 늦어져도 12월 첫째 주에는 사장단 인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또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 (78,400원 ▲900 +1.16%)의 실적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워 기존 체재 유지에 무게가 실렸다.



지난 3분기 매출이 분기기준 70조원을 처음 돌파하고, 3분기 누적 매출도 203조원을 기록해 4분기까지 합치면 역대 최고치인 2018년 연간 매출 243조 7700억원을 크게 앞지를 것으로 예상돼 유임 기대가 높았다. 올해 인사도 지난해와 비슷하게 삼성전자 3개 부문장들을 유임하는 선에서 안정 속에 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이유다.

하지만 인사가 세간의 예상보다 미뤄지면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고, 7일 인사의 뚜껑이 열리면서 파격으로 불릴만큼 변화가 컸다. 김기남 DS부문장 겸 CEO, 김현석 CE부문 대표이사, 고동진 IM부문 대표이사 등 3개 부문의 대표이사가 전원 교체됐다.



실적이 개선된 반도체 부문을 맡던 DS 부문의 김기남 부회장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으로 승진시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했고, CE나 IM의 각 부문장도 과거의 전례와는 달리 부회장 예우 없이 부문장에서 물러나게 했다.

아직 그룹 인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어서 다른 가능성이 남아있긴 하지만 삼성 인사 특징인 신상필벌을 감안할 때도 실적에 비해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삼성 그룹의 경우 부문장보다는 사업부장이 더 실권이 많아 김현석 대표와 고동진 대표가 이미 사업부장 직책을 뗐을 때 현업에서 한발 물러난 상태이긴 했지만 그래도 대표이사의 직책은 가볍지 않은 자리였다.

당초 3인 대표 유임 분위기에서 전격적으로 전원 교체로 바뀐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4일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 길에 기자들과 만나 언급한 '글로벌 시장의 엄중한 환경' 때문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이날 귀국 때 김포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의 출장 후 심경을 묻는 질문에 "투자도 투자지만, 이번에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제가 직접 보고 오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네요"라고 밝혔다.

이 메시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처절하게 진행되는 생존 경쟁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삼성전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자문한 것이고, 그에 대한 답이 이번 세 부문 대표 교체로 나타났다는 게 삼성 내부의 평가다.

삼성 관계자는 "24일 이 부회장의 '냉혹한 현실'에 대한 언급 이후 아무래도 인사팀에서 원래 인사안을 좀 더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겠느냐"며 "위기 상황에서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초 '안정'을 중심으로 짜여졌던 인사안에서 '변화추구'로 방향이 바뀌면서 주요 경영진들에 대한 설득작업 등이 진행되면서 인사가 이번 주로 미뤄졌을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감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주요 주주들의 의견이 인사안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지만 이는 삼성의 오랜 관행으로 볼 때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주요 주주들이 인사에 관여하는 경우가 없어 그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지난 14일 출국한 이 부회장은 미국 내 제2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입지 등을 매듭 지었다. 2021.11.24/뉴스1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지난 14일 출국한 이 부회장은 미국 내 제2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입지 등을 매듭 지었다. 2021.11.24/뉴스1
삼성 그룹 내 힘의 이동
또 이번 인사의 특징 중 눈에 띄는 것은 삼성전자 및 그룹 내 힘의 구도의 변화다.

삼성은 오랫 동안 TV 사업을 맡고 있는 CE부문과 휴대폰 사업을 관장하는 IM의 이원화 체재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세트사업이라는 같은 카테고리 내에 있으면서도 두 부문으로 나뉘어져 소프트웨어의 통일성 등이 결여돼 시너지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말과 2000년 초반 반도체총괄, LCD총괄, 정보통신총괄, 디지털미디어총괄 등으로 나뉘어 있다가 부품인 반도체와 LCD는 DS로 묶였으나, 세트인 정보통신과 DM부문(CE부문)은 나뉘어 운영돼 왔다.

세트 조직이 나뉘어 있는 것은 공동으로 운영해야 할 인적·물적 자산의 분산으로 인한 힘의 충돌과 역량의 분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세트의 조직을 하나로 뭉쳐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수년 동안 여러 이유로 진행되지 못하다가 이번에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를 들은 이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CE 부문 한종희 사장을 부회장을 승진시켜 세트부문을 맡긴 것은 TV와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두 조직을 융합시켜 시너지를 높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 올해 눈에 띄는 인사 중 하나로 삼성의 전자 계열사 대표이사가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경우다. 삼성 내에서는 '전자'와 '후자'(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삼성전자의 나름 선민의식은 다른 계열사와 다르다는 인식에서 출발했고 그 결과 전자에서 다른 계열사 CEO로 가는 경우는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경계현 삼성전기 CEO가 삼성전자 DM부문장 겸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이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원래 경 사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출신이긴 하지만 반도체를 한번 떠났던 사장급 인사들이 되돌아와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맡았던 경우는 거의 없다. 삼성전자가 최고라는 인식을 깨는 인사다.

이외에도 정현호 사업지원T/F 사장의 부회장 승진은 그의 위치가 삼성 그룹 내에서 어떤 위치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검사 출신인 김수목 삼성전자 법무실 송무팀장이 SET부문 법무실장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나, 삼성SDI로 자리를 옮긴 최윤호 사장 후임으로 박학규 DS부문 경영지원실 사장이 SET부문 경영지원실(삼성전자 CFO) 사장을 맡은 것도 눈에 띈다.

이같은 큰 변화를 진행하면서 당초 예상보다 인사가 늦어진 것으로 삼성 내외부에선 보고 있다.

한편 삼성 내 일각에선 "기업 인사라는 것이 실제 발표를 해야 인사가 진행되는 것이어서 언제로 예정돼 있었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 당초보다 빠르다, 늦다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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