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5일 여성 폭력 근절의 날을 맞아 파나마 대법원 앞에 놓여진 상징 구두들/사진=AFP
1시간에 6명. 전 세계에서 전·현 남성 연인 혹은 남편에게 살해 당하는 여성의 수 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 2020 글로벌 성별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159개국 여성 3명 중 1명, 즉 7억여 명이 일생에 한 번 이상 남성 파트너에게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어요.
더 들여다보면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는 여성에 대한 젠더 기반 폭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신체적, 성적 학대뿐 아니라 의식주 등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대한 차단, 감금, 의사소통 거부, 성희롱을 포함한 폭력.'
그렇다고 소득이 높은 '선진국'은 다를까요? 2018년 기준 미국과 캐나다, 싱가포르, 서유럽 국가 등 고소득 국가의 여성 3명 중 1명이 15세 이후 남성 파트너 혹은 모르는 남성으로부터의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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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여성 폭력 실태는 언론에 보도된 교제살인과 교제폭력 사건을 바탕으로 한국여성의전화가 낸 통계를 통해 가늠할 뿐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는 언론 보도된 것만 97건에 달했습니다. 살인미수는 131건입니다. 이틀에 여성 한 명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당한 거죠.
가정 폭력은 피해자들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경제에도 손실을 가져다 줍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원래 하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거나 더 나은 직업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죠. 유럽 '젠더 평등 연구소'는 젠더 기반 폭력으로 인해 유럽연합 경제가 연간 3660억 유로(487조7600억 원)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으로 추정했어요.
스페인은 2004년 여성 폭력을 '젠더 권력에 의한 폭력'으로 보고 별도의 법을 만든 최초의 유럽 국가입니다. 1997년 스페인 TV에 출연해 40년 간 남편에 의한 폭력을 고발한 아나 오란테스가 방송 후 남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입법 변화가 시작됐어요. 스페인 내 '여성 살해'는 2007년 76명에서 지난해 45명으로, 유럽에서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3월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스페인에서 열린 기념 시위/사진=AFP
이바나 밀로반노비치 세르비아 판사는 "여성 살해는 특정 범죄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여성 살해의 근본 원인은 다른 유형의 살인과는 다르며 사회 내 여성의 일반적인 지위, 여성 차별, 성 역할, 남녀 간 불평등한 권력 분배, 젠더 고정 관념 등에서 비롯된다는 겁니다.
숫자만 들여다 보면 이렇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피해자의 90%가 여성, 가해자의 99%가 남성이었습니다. '어떤 성별이 더 피해 입는다'는 말은 무의미해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남녀 대결적 시선'이 아니라 유난히 피해 입는 이들을 보호하자는 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