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열의 Echo]'오징어게임'과 '지옥'이 우리에게 던진 숙제

머니투데이 송정렬 산업2부장 2021.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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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에 유선전화를 설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10여년 전만 해도 결혼을 앞둔 대다수 신혼부부가 한 고민이다. 당시 이동통신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유선전화는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이미 2010년 5000만명 고지를 넘어섰다.

당연히 언제 어디서나 연락이 가능한 휴대폰이 있는데 굳이 집에 유선전화를 설치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낭비라는 '실리주의'의 목소리가 강했다. 하지만 명색이 신혼집에, 특히 양가 어른들이 자주 사용하는 유선전화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명분론'도 만만치 않았다.(개인적으로는 명분론을 선택했다.)



2021년 9월 현재 유선전화 가입자 수는 1237만명까지 쪼그라들었다. 우리나라 전체 2148만가구의 40%에 유선전화가 없는 셈이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기 전에 스마트폰부터 배우는 시대다. 각종 서류에 아직 남아 있는 유선전화번호란마저 머지않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지옥' 보셨나요?" 최근 식사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화제가 '오징어게임' '지옥'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K) 드라마다. 세계 1위 OTT(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인 넷플릭스 프로그램 순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작품들이다.



OTT발 방송미디어 시장의 지각변동에 소비자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집에서 IPTV(인터넷TV)·케이블 등 유료방송을 계속 볼 것이냐, 아니면 스마트폰·스마트TV 등 인터넷 지원기기를 통해 즐길 수 있는 OTT에 가입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 때문이다.

비록 국내에선 IPTV업체와 OTT간 제휴모델이 활성화했지만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유료방송 가입자들이 기존 유료방송을 해지하고 OTT로 전환하는 이른바 '코드커팅'(cord cutting)이 확산한다. TV 없이는 살아도 스마트폰 없이는 못사는 시대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OTT만 보겠다는 수요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OTT 가입자 수는 지난해 1135만명에 달했다. OTT 매출액이 전체 유료방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는 중국과 일본의 50~60%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내에서 OTT의 폭발적 성장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글로벌 OTT 플랫폼에 올라타 전세계로 수출되는 K드라마의 선전은 무척 반갑다. 하지만 문제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주도하는 지각변동이 국내 관련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은 그리 장밋빛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웨이브, 티빙 등 토종 OTT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는 편당 238만달러(약 28억원)에 9부작 '오징어게임'을 제작하고 IP(지식재산권)를 독식함으로써 무려 1조원의 가치를 창출했다. 국내에선 넷플릭스가 헐값의 제작비를 들여 혼자 대박의 수익을 차지했다는 비난도 일었다.

하지만 정작 그 헐값의 반의반도 투자하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국내 주요 드라마의 편당 제작비는 6억~7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제작 하청공장'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더이상 국내 시장에서 법·제도적 책임과 의무없이 과실만 누릴 수 있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그러니 넷플릭스가 망사용료 요구를 무시하고 이용료는 거침없이 올리는 것이다.

국내 방송미디어업체들을 좌절시키는 '기울어진 운동장'도 바로잡아야 한다. 예컨대 국내 업체들은 모자이크를 덕지덕지 붙여야 하는 강력한 내용규제를 받지만 넷플릭스는 높은 수위의 콘텐츠를 마음대로 제작한다. 과연 이런 현실에서 경쟁이 가능할까.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낡은 기존 방송법을 넘어 유료방송과 OTT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법·제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OTT 시장의 서바이벌게임은 국내 업체들엔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오징어게임'과 '지옥'이 우리에게 던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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