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대주교 "교황청, 北에 코로나 백신 지원 준비돼 있다"

머니투데이 로마(이탈리아)=정진우 기자 2021.10.3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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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2일 청와대 관저에서 로마 가톨릭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와 면담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021.07.12.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2일 청와대 관저에서 로마 가톨릭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와 면담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021.07.12. *재판매 및 DB 금지


로마 가톨릭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인 유흥식 대주교가 지난 30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 "지금으로선 상대방(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라며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고 가능하면 (상호) 관계에서 상대가 대답을 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유 대주교는 또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차원에서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유 대주교는 이날 오전 바티칸시티에서 청와대 출입(순방) 기자들을 만나 관련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유 대주교는 지난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를 거쳐 이날 음성 판정을 받아 격리에서 해제됐다.



앞서 지난 29일 문재인 대통령은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해 교황과 20분간 비공개 단독 면담을 가졌다. 당초 유 대주교는 문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에 직접 배석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무산됐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교황님께서 기회가 돼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교황은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며 "여러분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이지 않느냐, 기꺼이 가겠다"고 화답했다.

교황은 3년 전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교황 초청 의사를 전했을 때도 수락 의사를 표한 적이 있다.
[인천공항=뉴시스] 조수정 기자 =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전 천주교 대전교구장)가 29일 오후 로마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로 들어서고 있다. 2021.07.29.[인천공항=뉴시스] 조수정 기자 =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전 천주교 대전교구장)가 29일 오후 로마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로 들어서고 있다. 2021.07.29.
유 대주교는 교황이 북한의 초청장이 오면 방북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지를 묻는 질문에 "제가 말씀을 드릴 처지는 아니다"면서도 "정부도 그렇지만 교황청도 여러 가지 길을 통해 교황님이 북한에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서 노력하고 있다. 때가 맞아야 한다. 잘 됐으면 좋겠다"며 교황의 방북이 성사되기를 고대했다.

이어 문 대통령과 교황 간 만남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두 분이 눈 마주침에서부터 굉장히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듯한 깊은 신뢰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어 "신뢰가 있다는 것을 그동안 교황님이 대화할 때나 대통령님이 전할 때 항상 봤기 때문에 저한테는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문 대통령과의 면담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면담을 가진 것을 두고선 "무슨 말씀을 나누셨는지 제가 알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분명 교황님께서 한반도에 대해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말씀을 하셨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유 대주교는 또 코로나19 백신 등 북한에 대한 교황청의 인도주의적 지원과 관련해서도 "분명한 건 교황청에서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중요한 건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지원을) 받겠다고만 하면 이런저런 길이 충분히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교황청은 북한과 직접 교류를 하지 않고 있다. 유 대주교는 "(북한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적은 없지만 북한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길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노력 중"이라며 교황청 자선단체인 '산에지디오'를 예로 들었다.
[바티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하고 있다. (사진=바티칸 제공) 2021.10.29. *재판매 및 DB 금지[바티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하고 있다. (사진=바티칸 제공) 2021.10.29. *재판매 및 DB 금지
유 대주교에 따르면 '산에지디오'는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과 의견 교환 및 만남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다만 유 대주교가 직접 이탈리아에 주재하는 북한 대사관 인사와 접촉하려 해도 현재 '대사' 보다 낮은 직급의 '공사'가 나와 있어 '카운터파트너'상 직접적인 접촉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대신 유 대주교는 "일반적인 말로 제가 그분(산에지디오)들의 상관이기 때문에 이분들을 통해 내 의견을 (북한에) 전달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유 대주교는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제일 먼저 북한과 수교한 나라다. 친북 (성향의) 의원들도 있어 그 사람들이 가끔 북한을 가기도 한다"면서 향후 의원들과 만나 북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도 시사했다. 이후 논의 결과를 교황청 국무원에 전달하는 등 간접적으로라도 북한과의 접촉을 위해 힘쓰겠다는 설명이다.

한편 유 대주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 이후 '문 대통령의 안부를 받은 게 있나'라는 질문에는 "굉장히 아쉬워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지난번 (한국에서) 떠나올 적에 '로마에서 10월에 뵙겠습니다'라고 했었다"며 "하느님이 이런 상황을(...)"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유 대주교는 곧 격리해제 이후 처음으로 교황을 만나 이번 문 대통령과의 면담 내용을 전달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 대주교는 "이번 주가 지나면 성직자성 장관으로 교황님을 단독으로 뵐 일이 생길 것"이라며 "이번 일(면담)에 대해서 당신(교황)이 말씀을 하실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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