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차례의 굵직한 발표가 특히 그랬다. 삼성전자가 이달 7일 파운드리 포럼에서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시스템반도체 양산 시점을 내년 하반기에서 상반기로 앞당기고 2025년부터 2㎚ 양산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시장에선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 나왔다.
공격적 선전포고…"결 다르다"
3년 전엔 위기상황을 이렇게까지 여과없이 세세하게 드러낸 표현이 없었다는 얘기다. 2018년 투자 계획이 '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방안'이라는 타이틀로 발표된 데 비해 이번 발표는 '코로나19 이후 미래 준비'라는 이름이었던 점도 눈길을 끈다.
업계 한 인사는 "위기론이 이건희 회장의 트레이드마크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못 느끼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최근 삼성의 태도는 구체적인 진단과 목표를 공격적으로 공개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며 "이 회장이 2014년 쓰러진 뒤 이어졌던 분위기와는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위기감 고조…내부 혁신도 박차
그룹 내부적으로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안주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성과 미흡, 비대해진 조직의 시장 대응 속도 저하 등이 숙제라는 진단도 고개를 든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그룹 핵심 계열사가 보스턴컨설팅에 용역을 맡긴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
삼성 안팎에서는 올 연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컨설팅 결과와 맞물려 고강도 지배구조·조직개편안과 임원인사가 발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2017년 2월 해체된 그룹 미래전략실을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컨트롤타워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역사적 변곡점"…제2의 성장통 진입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9월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멀티캠퍼스에서 진행된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 교육 현장에서 김부겸 국무총리를 맞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이 매체는 "사업적으로 하드웨어 우선주의를 지켜온 삼성이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애플의 서비스 사업모델을 참고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삼성이 삼성페이와 삼성헬스를 넘어 반도체 부문에서도 차세대 메모리 플랫폼(CXL)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개발 솔루션을 공개하는 등 종합 솔루션업체로 한걸음을 내딛은 것과도 맞물린다. 사업 자체뿐 아니라 조직 문화에서도 상당한 성장통을 감수해야 하는 과정이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인사는 "이코노미스트가 이 부회장에게 그동안 내비쳤던 신중함보다 좀더 거침없는 면모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이 부회장과 삼성은 이미 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때 글로벌 IT산업을 주름잡았던 일본 소니의 4대 수장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은 "소니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과거의 성공을 잊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며 "삼성이 앞으로 경험할 어려움은 어떻게 반도체, 휴대폰 등 과거의 성공을 잊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부회장도 지난해 신년 메시지로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