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의 '오징어 게임' 관련 상품/사진=중국 인터넷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드라마가 중국에서 이 정도의 반향을 일으키는 건 2014년 초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처음이다. 당시 필자가 살던 상하이 코리아타운에 있는 치킨집 앞에 중국인 손님이 몇십 미터 줄을 서서 기다리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진=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포스터
OTT 시장만 놓고 보면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은 한국보다 훨씬 크다.
한·미·중 각국 최대 OTT업체 매출액을 비교해 보자. 중국 최대 OTT업체인 아이치이(iQIYI)의 지난해 매출액은 원화로 5조3500억원에 달한다. 넷플릭스(29조7500억원)보다 적지만 한국 최대 OTT업체인 웨이브(1802억원)의 약 30배에 달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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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수도 아이치이는 1억170만명으로 넷플릭스(2억400만명)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웨이브(1100만명)의 9배가 넘는다. '오징어 게임'도 우리나라 OTT가 아니라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했지만, 매출액도 크고 구독자 수도 많은 중국 OTT업체는 왜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를 못 만드는 걸까.
지난해 6월 중국 유명 여배우인 장쯔이(章子怡·42)가 '은밀한 구석'에 대해 "드디어 미드·영드에 뒤지지 않는 중국 드라마가 나왔다"며 소셜미디어에서 극찬한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필자도 두 드라마를 모두 봤는데 시종일관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드라마였다. 하지만 '침묵의 진상'의 경우 판에 박힌 권선징악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됐고 검열 때문인지 폭력 수위도 낮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우선 검열 때문에 중국은 '오징어 게임'처럼 폭력성이 심한 드라마는 절대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천만영화인 '신과 함께'도 '미신성'(미신적 성향) 때문에 중국에서 끝내 개봉되지 못했다.
검열뿐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선전·홍보도 문제다. 특히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동부유'를 제창하는 등 중국 공산당이 좌회전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자 영화, 드라마에서도 중국 정부의 영향력이 부쩍 커진 게 느껴진다. 지난 8월 방영된 '소흑풍폭'(掃黑風暴, Crime Crackdown)과 국경절 연휴에 개봉한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長津湖)가 대표적인 사례다.
'장진호'는 언론에서 많이 다뤘으니 '소흑풍폭' 얘기를 해보자. 이 드라마의 줄거리는 중앙 정부에서 파견한 감찰조가 지방정부와 암흑가의 결탁을 파헤치는 내용인데, 순홍레이(孫紅雷·51)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하면서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필자도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해서 재밌게 봤지만, 뒤로 갈수록 중국 공산당이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부 홍보가 너무 노골적이라 계속 보기 힘들었다.
'침묵의 진상'에서도 경찰이 범죄세력을 소탕하는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나오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예 드라마가 중국 공산당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한 느낌이 느껴졌다. 이래서는 중국 드라마가 중국이라는 '우물' 안의 개구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아무리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라 해도 중국만으로는 결국 우물이다. 나중에는 중국인들도 이런 드라마를 보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키우려고 하는 '소프트 파워'는 사회에서 유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정부에게서는 일부만 생겨난다. 현 상황으로 보면 중국 공산당은 오히려 소프트 파워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중국 공산당이 중국 소프트 파워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