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다른 남자 만났다며 여자친구 수차례 폭행하고 목 조른 남성(벌금 400만원).
여자친구 머리를 테이블로 때리고 담뱃불로 손등지진 남성(벌금 300만원).
그러는 사이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죽고 있다. 30대 남성 A씨는 올해 7월 서울 오피스텔에서 여자친구를 마구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살 날이 구만리 같은, 주로 20대인 여성 피해자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을 보라. 죽을 때까지 맞아서 죽는다. 이게 너무 아프다. 이게 중대한 범죄가 아닌지 묻고 싶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은 훨씬 더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허 입법조사관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지속성, 은폐성 같은 특징을 다 가지고 있다"며 "내 동선과 주소, 가족까지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심지어 피할 수 없는 게 가해자라면 이게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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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친밀성을 '금방 화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해 가볍게 여긴단 얘기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이란 단어 안에 납치, 성폭행, 살인 등 강력 범죄가 다 들어가는 걸 감안하면 '이게 과연 가벼운 범죄인가'부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친밀성'을 이유로, 더 엄격하게 처벌하는 미국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하면, 가해자를 정확히 식별해 반드시 체포하도록 하는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상자에는 현재 또는 이전 배우자, 현재 또는 이전 파트너, 동성 커플, 데이트 관계에 있는 자가 모두 포함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9월 16일 발간한 보고서(허민숙)에 따르면, 1970년대엔 미국도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 대응에서 '중재'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이 피해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단 비판이 제기되자 의무체포 제도를 도입했다. 예컨대, 뉴욕주에선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가 폭력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경우 반드시 가해자를 체포한다.
여기에서 경찰은 당사자간 화해나 중재를 시도해선 안 된다. 체포나 고소를 원하는지도 물어선 안 된다. 원치 않는단 의사를 밝힌 경우에도 반드시 가해자를 체포해야 한다. '반의사 불벌죄'를 적용하는 국내 사례와는 천지차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국내 가정폭력 사건처리인원 5만2431명 중 구속된 자는 330명(0.6%)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의무체포 제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두 가지라고 했다. 하나는 '가정폭력이 더 이상 관용할 수 없는 범죄'라는 사회적 메시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다른 거라고 했다. 가해자를 제재하는 게, 피해자의 생존과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