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조모씨(29) 집에서 올린 차례상. 이중 데친 문어요리를 비롯해 준비가 어려운 음식은 조씨가 요리한다. /사진=조모씨 제공
시댁 제사를 지내온지 햇수로 30년차인 전업주부 유자연씨(가명·58)는 올 추석 연휴를 앞두고 마음이 무겁다. 코로나19(COVID-19) 확산에 따른 거리두기 수칙으로 한동안 시댁 식구들이 명절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번 추석에는 다시 서너명 정도 방문객이 올 예정이다.
8~9인분의 명절 음식 준비는 꼼짝없이 맏며느리인 유씨의 몫이다. 유씨는 "방문하는 인원에 따라 그만큼 준비해야 할 음식 양과 가짓수가 늘어난다"며 "작년 추석과 지난 설에도 제사를 지냈지만 사람이 안 모여서 비교적 편했는데 이번 추석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모임이 사실상 어려웠던 지난 명절보다 가족 모임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설 연휴에만 해도 당시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명절 가족모임에도 적용됐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모씨(40)도 명절을 앞두고 남편과 말다툼을 벌였다. 육아와 일 때문에 바쁜 와중에 시어머니가 명절 음식을 준비해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 명절음식을 파는 곳도 많은데 시댁에서는 청결이나 영양을 이유로 유독 집에서 한 음식만 찾으신다"며 "주말 내내 아이를 보며 재료 고르고 음식 준비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 울산역에서 귀성객들이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이 시각 인기 뉴스
그는 "추석 때마다 어머니가 체력적, 정신적으로 피곤해하시는 게 보여서 나도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얼마 전에는 아버지께 '비혼 선언'을 했다. 이런 집안의 장남인 나와 누가 결혼을 하고, 하더라도 과연 정상적인 관계가 지속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사람인'이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직장인 3033명을 대상으로 '명절 스트레스'에 대해 묻자 응답자의 77.3%가 '(코로나19로) 안 봐도 될 이유가 생겨서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답했다. 명절에도 '반강제적'으로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되려 명절 스트레스를 줄인 셈이다.
다만 여성 응답자는 81.9%가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답해 남성 응답자(72.4%)보다 9.5%포인트 더 높았다. 또 '추석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한 여성(47.0%)은 남성(32.9%)보다 14.1%포인트 더 많았다. 기혼자는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55.8%)이 남성(30.2%)보다 25.7%포인트 더 많았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명절이 우리 전통문화다 보니 여전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 특정인들에게만 부담이 된다"며 "현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명절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변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어머니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바를 며느리에게 전해야 하고, 이에 며느리들은 명절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자식 등 다른 가족 구성원에까지 부담이 전이된다"며 "작년 설에는 모이지 못해 안도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달라진 만큼 서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