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부탄가스처럼 '세계 1위'였는데…中에 추월당한 韓 면세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21.09.1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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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위태로운 세계1위 면세점
매출 2019년 24조원→2020년 15조원 '반토막'
韓지원책 없는 사이 中지원책 업고 초고속 성장

편집자주 세계 1위 한국 면세점이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19로 내외국인의 출입국이 가로막혀 매출은 바닥을 찍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면세굴기로 한국 면세시장의 최대 고객인 중국인들이 자국 면세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다. 그러나 국내에서 면세업은 여전히 '귀족산업'이라는 그릇된 인식으로 제대로 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유통업이자, 대규모 고용을 실현하는 한국 면세업 구하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공항=뉴스1) 성동훈 기자 =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은 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8.3/뉴스1  (인천공항=뉴스1) 성동훈 기자 =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은 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8.3/뉴스1


"한국 면세시장은 1위니까,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도 한국 면세시장 입점을 원했었죠"

반도체, 부탄가스, 정밀화학원료, 평판압연제품, 그리고 면세. 한국이 전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상품·산업 군이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2014년 세계 최초로 연 매출 2조원 돌파를 달성하는 등 전세계 공항면세점 '매출 1위'를 차지해왔다. 브랜드 명성 유지를 위해 절대 공항면세점에 입점하지 않았던 루이비통도, 전세계 공항 면세점 중 최초로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점했다.



지난해 초까지는 한국 면세점의 지위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매년 연간 매출액 기록을 경신하며 지위를 공고화했다. 2019년 국내 면세점 매출은 24조8586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전년비 31.1% 늘어난 수치였다.

반도체·부탄가스처럼 '세계 1위'였는데…中에 추월당한 韓 면세
당시 면세업계의 고민은 따이공(중국 대리구매상)의 매출 비중이 너무 크다는 데 있었다. 당시 따이공은 시내면세점 매출의 70%, 공항을 포함한 면세점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면세업계는 판매채널 다변화를 위해 해외 진출 등을 꾀하며 세계 1위 지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고객이 뚝 끊긴 것이다. 이젠 따이공이라도 찾아주는 게 어디냔 안도가 나왔다. 일반 관광객 매출이 급락한 현재 따이공 매출 비중은 90%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은 전년비 반토막 난 15조5042억원을 나타냈다. 코로나19 발발 초기만 하더라도, 업계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엔 관광객이 돌아오면서 자연히 시장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재 면세업계에선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코로나 이후 관광이 재개되더라도 이전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서울시내 한 시내면세점 내 매장 전경 2021.08.24 /사진=이재은 기자서울시내 한 시내면세점 내 매장 전경 2021.08.24 /사진=이재은 기자
세계적인 면세 전문지 무디리포트의 마틴 무디 회장은 꾸준히 "글로벌 1위 한국 면세시장이 위험하다"며 한국 면세시장에 경고 신호를 보낸다. 그는 "한국 애널리스트 등은 중국 하이난 면세시장의 강력한 성장이 코로나에 따른 일회성 현상이라고 보지만, 하이난 면세시장의 빠른 성장과 하이난 면세특구 지원 정책 등을 고려할 때 너무 희망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중국은 한국 등으로 외화가 반출되는 걸 막기 위해 2011년 중국 최남단 하이난을 내국인 면세 특구로 지정하고 육성해왔는데 코로나19 발발 후 더욱 전폭적인 '면세굴기'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중국 당국은 하이난을 방문한 내국인이 본토로 복귀한 후 180일간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연달아 지난해 7월엔 하이난에서의 연간 1인당 면세 쇼핑 한도를 3만 위안(약 515만원)에서 10만 위안(약 1715만원)으로 늘렸고, 쇼핑 횟수 제한도 없앴다. 면세상품 품목도 38개에서 45개로 늘렸다.


중국 당국의 '면세굴기 효과'는 톡톡했다. 2019년까지만해도 세계 면세점 순위 '톱3'는 스위스와 한국 면세점이 차지했지만, 지난해는 중국이 선두로 올라섰다. 중국 국영기업 중국면세품그룹(CDFG)이 2020년 전세계 매출 1위 면세점의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 면세점 1위에 오른 CDFG는 하이난에서만 매출의 절반을 올렸다. 하이난 면세점 7곳 중 4곳이 CDFG 소유다.

반도체·부탄가스처럼 '세계 1위'였는데…中에 추월당한 韓 면세
특히 CDFG가 하이난 북부에 현재 건설중인 하이커우 면세점이 내년 중순 문을 열면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 면세점은 하이난 남쪽 싼야국제면세점(7만2000㎡)이고, 하이커우 면세점은 이보다 약 2배 넓다고 하니 규모 기준 세계 1위와 2위 면세매장이 모두 하이난에 자리하게 되는 셈"이라며 "하이커우 면세점까지 열면 한국 면세산업의 경쟁력은 정말 끝"이라고 말했다.

중국 면세시장의 성장세가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경우 한국 면세시장은 자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면세점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 직매입시 많이 구입해와야만 더 저렴하게 팔 수 있다. 한국 면세시장은 따이궁들과 국제 관광객, 국내 관광객 등의 높은 수요 덕에 수년째 1위를 지키고 있어서 국내 면세 업체들은 그동안 좋은 브랜드를 유치하고 가격경쟁력 있는 상품을 입고할 수 있었다.만일 중국 면세시장이 한국 면세시장보다 더 커져서 협상력이 한국을 압도하게 된다면 자체 경쟁력을 잃어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이 활성화되더라도 고객들이 더 이상 한국 면세점들을 찾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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