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서울에 있는 한 미대에서 회화계열을 전공했다는 김지민씨(26·가명)는 미대 입시생 시절 다니던 학원 강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서울 내 명문 미대에서도 강의를 하던 강사였는데 고등학생들에게 교수가 부르면 룸살롱에 나간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사적으로 연락하면서 '애인하자'는 제안도 했고 입에 담기 힘든 성적인 얘기를 스스럼없이 했다"며 "이 강사는 이미 예고에서 학생을 성추행해 쫓겨난 전적도 있었는데 이런 사례는 미대 나온 학생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흔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9일 '홍익대 미대 인권유린 A 교수 파면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에 따르면 A 교수는 학생들에게 "네가 남자였으면 여기저기 성매매 업소에 데려갔을 텐데", "왜 바지 지퍼가 내려가 있나. 혼자 텐트 속에서 자위한 거 아니냐" 등의 성희롱성 발언을 지속적으로 했다.
이번 논란을 두고 미대 재학·졸업생들은 "과거부터 이어져온 악습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시대가 바뀐 줄 알았는데 이번 사건을 보니 '역시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교수가 여학생들한테 '찔러' 봐서 학생이 '오케이'를 하면 (애인 관계가) 성사되고, '오케이'를 안 하면 교수 눈 밖에 난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수도권 소재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B씨(31)는 "대학 시절 강의 도중 '너처럼 생긴 게 내 이상형'이란 말을 들었다"며 "당시 비전임교수였던 가해자는 최소 5번 이상 강의실과 사적인 자리를 가리지 않고 그런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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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재학생들이 미대 교수 성희롱 파문에 분노하고 있다./사진=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에브리타임 캡처
충청권 한 대학의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C씨(27)는 "업계가 좁은 만큼 취업을 앞둔 학부생들은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교수들이 공모전을 주관하는 학회장인 경우가 많아 말 잘 듣는 학생을 교수가 직접 뽑아서 보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미술대학원을 졸업한 직장인 D씨(29)는 "학부 시절 한 교수가 특정 대학원생을 자주 술자리에 불렀는데 졸업을 앞두고 교수가 해당 학생에게 취업 자리를 알선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며 "이런 게 위력관계 아니겠나"라고 했다.
"학생들은 최대한 '피할 뿐"…"업계 위계질서 해체 노력 우선돼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에서 열린 홍익대 미대 인권유린 A교수 파면 요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홍대 측은 최근 문제가 된 미대 교수 파문에 대해 "피해 학생들의 신고가 접수되는 대로 관계 기관을 통해 진상 조사하겠다"며 "이에 상응한 조처가 취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양희도 홍대 미대 학생회장은 "최근 4년간 미대 안에서 발생한 학생·교수 간 성범죄 사건이 최소 2건 더 있다"며 "사법처리 1건, 학내징계 1건이며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어 알려지지 않은 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교내 처벌뿐 아니라 업계 내부의 위계질서를 해체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범죄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이은의 변호사는 "예체능처럼 업계가 좁은 모든 분야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며 "교수가 파면돼도 업계에는 남기 때문에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어 "처벌 강화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위계질서를 해체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