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처럼 주택에 대해 근저당을 설정할 필요도, 집값에 대해 감정평가를 받을 필요도 없으니 은행 입장에선 업무 처리 비용도 적다. 은행권에선 '강북의 주택담보대출보다 강남의 전세대출이 낫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집값 대책으로 정부가 꾸준히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하면서 전세대출은 은행에게 더 효자 상품이 됐다.
세입자는 속으론 오른 전세금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 전세대출이다. 전세계약서 들고 은행에 가면 어렵지 않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월세가 아니라 전세니 어차피 사라지는 돈도 아니다. 이자가 문제인데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부담도 과거만큼 크지 않다.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리고, 세입자는 전세대출로 오른 전세금을 내거나 갭투자에 나서고, 은행은 전세대출로 손쉽게 돈을 번다. 집주인, 세입자, 그리고 은행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전세대출은 급증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은행권의 월별 전세대출 증가액은 1조원 수준이었다. 2018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연말에는 월별 증가액이 2조원을 넘어섰고 2019년부터는 매월 2조원을 웃돌았다. 2020년부터는 3조원을 넘는 달이 나타났고 그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셋값이 급등했으니 전세대출이 늘어나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엔 전세대출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까지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대출 규제로 마이너스대출, 신용대출이 제한되자 전세대출을 받아놓으려는 사람들이다. 대출로 전세금 내고 가지고 있던 자금은 다른 용도로 쓴다. 서민들의 전세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보증한 전세대출은 그렇게 용도전환된다. 돈의 꼬리표가 없으니 막을 방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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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전세대출을 중단하는 은행이 나왔다.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강화한 영향이다. 실수요자는 전세대출까지 막으면 어쩌라는 거냐고 반발한다. 하지만 이미 가계대출 목표치가 목에 찬 은행은 어쩔 수 없다. '공유지의 비극'이다. 서민 실수요 대출이라고 풀어놨더니 집주인, 세입자, 갭투자자, 은행이 다 뜯어먹어 버린 상황이다.
전세대출이 공유지의 비극이 된건 정부 탓도 크다. 수년전부터 파국의 조짐을 보면서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18년 전세대출 보증은 서민을 위한 것이라고 소득기준을 강화하려다 역풍을 맞았던 트라우마가 정부의 손발을 묶었다.
파국을 맞았지만 전세제도가 존재하는 한 서민 실수요자를 위한 전세대출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가계대출 관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전세대출이 갭투자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무나 뜯어먹는 공유지가 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사진=인트라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