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지지율' 40% 실감한 靑 "與에 패싱 안 당해"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21.09.0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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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청와대24시]여당이 '언론중재법' 강행하지 않고 청와대 얘기를 들은 이유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영상)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8.31.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영상)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8.31. [email protected]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여야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전체회의를 열고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손해배상을 물리는 것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던 지난달 1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기자협회에 창립57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골자로 한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이 메시지를 통해 "언론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한 언론자유는 누구도 흔들 수 없다"며 "언론자유는 민주주의 기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환경에 디지털화와 같은 변화의 물결이 거세질수록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가 더욱 소중하다"며 "한국 언론이 끊임없는 비판과 성찰로 저널리즘의 본령을 지켜낸다면 국민들은 자유를 향한 한국 언론의 여정에 굳건한 신뢰로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기자들이 써 내려간 모든 문장은 영원히 기억될 시대의 증언"이라며 "정부는 여러분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쪽에선 여당이 언론에 재갈을 물릴 법안에 대한 강행처리에 나섰고, 다른 한쪽에선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대통령의 메시지에 부담을 느꼈을까. 여당은 이날 결론을 못내고 이틀 후 다시 문체위를 열어 단독으로 이 법안을 처리했다. 8월25일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열고 국민의힘 퇴장 속에 또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야당을 패싱하는 등 절차적인 정당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자 청와대는 물밑에서 여당을 설득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을 비롯해 청와대 인사들이 여당 지도부에 우려를 전달했다. 결국 부담을 느낀 여당은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강행하지 않고 한달정도 협의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지지율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임기를 8개월 앞둔 상황에서 40%대를 기록하는 지지율 덕분에 여당도 청와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 등 지도부는 이번 정기국회를 앞두고 언론중재법을 무조건 처리할 계획이었다. 야당의 반대가 거세지만,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 법에 찬성한다"는 여론을 이유로 댔다. YTN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7월30일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56.5%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35.5%였다.(이번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4.4%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9.1/뉴스1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9.1/뉴스1
그러나 청와대 생각은 달랐다. 청와대 참모진은 여당의 언론중재법 처리 과정을 지켜보며 지난해 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극한 대립을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처리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윤 전 총장 징계안은 실패로 돌아갔고 문 대통령의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다. 복합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일각에선 이처럼 여권의 일방적인 독주가 4·7재보궐선거 참패를 가져왔단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의 말대로 여당의 독주가 불러올 여러 문제에 대해 청와대 내부에서도 우려를 했다"며 "민감한 문제일수록 여야 협의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국민의힘과 언론단체들은 '언론중재법'을 둘러싼 여당의 입법 폭주의 최종책임이 문 대통령에게 있다며 거부권 행사를 압박했었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가 의결해 보낸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해당 법률안을 국회로 돌려 보내 재의(再議)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중 2차례, 이명박 전 대통령은 1차례 각각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가 있다. 문 대통령의 경우 임기 중 '타다 금지법' 등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요구받아 왔지만 수용한 전례가 없다.

청와대 안팎에선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든, 하지 않든 언론중재법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만으로도 당청 간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청와대가 사전에 조율에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다. 실제로 여야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제외한 나머지 쟁점 안건을 처리키로 합의했다. 안건에서 제외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경우 오는 27일 본회의에 상정하되, 협의체를 구성해 피해구제 등 세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180석에 가까운 힘을 갖고 있는 여당이 앞으로도 민감한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입장을 살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이는 역대 정권 말과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과거엔 대통령이 임기말에 지지율이 낮은 탓에 유력 대권 주자를 등에 없은 집권 여당이 청와대를 패싱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금처럼 높게 유지된다면 그럴 수 없다. 여당 역시 지지율을 신경써야 하는 입장에서 강성 당원들의 뜻에 따라 입법 독주 등에 나서면,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중도층' 등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민주화 이후 지난 30여년간 각 정권 말기엔 어김없이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 여당이 청와대를 패싱하는 등 당청 간 갈등이 많았다"며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청와대 입장을 신경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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