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원더풀한 공무원이 되는 길

머니투데이 최재용 인사혁신처 차장 2021.07.27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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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얘기를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사건 현장의 증거를 과학적으로 조사하여 초동 수사를 지원하고, 미제사건의 해결에도 기여하는 과학수사 전문기관답게 방송에 소개된 국과수 직원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었다.

특히 유전자과장은 무려 20년 이상을 유전자 분석 업무에만 매진해온 베테랑 감식관으로, 범죄 현장의 각종 유전자 흔적을 통해 범인을 찾아내는 그의 활약을 통해 2006년 서래마을 영아 살인사건과 2008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등이 해결될 수 있었다고 한다. DNA를 활용한 과학수사 기법이 생소했던 시절을 지나 오늘날에는 수십 년 전의 미제사건까지 DNA 분석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유전자 분석업무에 바쳐온 오랜 세월의 노력과 집념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성을 가진 공직자가 공익에 보탬이 된 사례는 또 있다. 작년 1월,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등 5대 쌀 생산국과 2015년부터 진행해온 '쌀 관세율 협상'에서 우리 정부의 요구사항을 모두 관철하는 내용으로 WTO(세계무역기구)의 승인을 받아내었다. 상대국들의 강력한 관세율 하향 조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수입산 쌀에 513%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5%의 관세가 붙는 '의무 수입물량'은 기존 수준을 유지해 우리 쌀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년이나 끌어온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통상과장의 활약이 있었다. 담당과장은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자리에 재직하면서 협상 초기 단계의 전략 수립부터 실무 협상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고 한다. 중앙부처 과장들이 통상 한 자리에서 2년 내외를 근무하는 것에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셈이다. 6년의 기간 동안 협상의 배경과 상대국들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해 수차례의 상황 변화에도 능수능란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선 사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공직사회의 전문성은 공익의 신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새로운 감염병의 발생, 기상이변 등 점점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진 오늘날의 사회 문제에 정부가 보다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과 통찰력을 상황에 맞게 응용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더욱 필수적이다.

인사혁신처는 2017년 공직 내 '한 우물 파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하여 전문직공무원 제도를 도입하였다. 국민생활 및 안전과 밀접한 분야를 지정하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당 분야에서만 근무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 앞서 언급한 국과수의 법의 분야를 비롯하여 국제통상(산업통상자원부), 재난관리(행정안전부), 기상예보(기상청) 등 10개 부처 11개 분야가 지정되어 있다. 지난 7월 20일에는 민간 전문가도 바로 전문직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전문직공무원 인사규정 개정안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얼마 전까지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씨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윤여정씨는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팠고,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에서 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미나리는 원더풀(wonderful)'이라는 영화 속 윤여정씨의 대사처럼 공직에도 '원더풀'한 전문가들이 점점 늘어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기고]원더풀한 공무원이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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