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출', 방대한 세계관보다 시청자 설득이 필요해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7.2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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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방송캡처 사진출처=방송캡처


여행자유화 시대 이후 세계는 빠른 시간에 하나의 개체로 수렴됐다. 지구를 마을에 빗대 ‘지구촌’이라는 단어도 만들어지고 서로 다른 인종과 언어, 기후와 문화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 세계를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없다’. 지금 지구는 수많은 ‘멀티버스(Multi-Verse)’로 가득 차 있다.

‘세계관’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대한민국의 문화를 설명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가 됐다. 창작자가 만든 설정이 단순한 상황이 아닌 세계를 이룰 정도로 방대하다는 의미로, 그 안 모든 삶의 규칙과 규범은 세계관의 필요에 의해 작동한다. 우리는 모두 창조주가 됐으며 서로 매력적인 세계를 창조한 후 그 세계들 사이의 호감도를 비교해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TV 예능에서도 세계관은 중요하다. 그 세계는 이 사람이 이럴 수밖에 없는 세계관이라고 하면 많은 시청자들이 넓게 이해할 정도로, 세계관은 지금 TV에서 많이 포용되는 개념이다. ‘놀면 뭐하니?’의 부캐(부캐릭터) 잔치, 김다비 이모의 ‘조카 사랑’ 등도 모두 세계관이 독자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예 세계관을 이름 지은 예능도 있다. 최근 ‘DTCU(대탈출 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을 만든 tvN ‘대탈출’이 그렇다.

2018년 7월 시작된 ‘대탈출’은 당시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얻던 ‘방탈출 게임’에 착안해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방탈출 게임은 자발적으로 특정 공간에 갇힌 플레이어들이 그 방 안에서 제시되는 수많은 증거들을 조합해 탈출 비밀번호를 알아낸 후 방을 빠져나오는 형식이다. 각종 잡다한 지식은 물론 이를 묶어내는 추리력도 필요하고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 사이의 협동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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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갓 탤런트’를 시작으로 ‘더 지니어스’ 시리즈를 통해 지식싸움과 권력을 통한 집단의 이합집산을 리얼하게 그려낸 정종연PD는 2016년 연출한 ‘소사이어티 게임’을 통해 만들어낸 가상사회의 개념을 더욱 확장해 ‘대탈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나의 장소를 벗어나는 게 전부였던 ‘대탈출’은 서서히 지난 방송분과 이번 탈출의 이야기가 연결되고 관련 인물도 나타났다. 심지어는 하나의 긴 시나리오를 갖고 여러 회차를 통해 이야기의 중심부로 출연자들이 빨려들어갔다.

지난 시즌 막바지의 타임머신 에피소드는 그 정점에 있었다. 제작진은 실제 타임머신의 효과를 내기 위해 거대한 타임머신 구조물이 이동하는 레일을 까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디테일을 살린 구성으로 출연자들이 실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백 투 더 경성’으로 명명된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아예 공간을 세트로 확장한 후 그 안에 보조출연자들을 대거 투입해, 하나의 드라마 또는 영화를 보는 듯한 거대한 스케일을 느끼게 했다.

11일 시작한 시즌 4는 지난해 6월 막을 내린 시즌 3의 세계관을 연장한 방송이었다. 타임머신을 연결고리로 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지만 코로나19의 기승으로 시즌은 충분한 몰입도를 가질 수 있는 시차를 두지 못하고 1년 이상 지체됐다. 결국 촬영은 재개됐고 이번에는 멤버들이 아예 태초 부족국가의 느낌을 가진 ‘아한’으로 갔다.

사진제공=tvN사진제공=tvN

이제 ‘대탈출’은 방이나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는 탈출로서의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또는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 그 안을 체험하는 체험형 예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는 정종연PD가 ‘더 지니어스’로서 그린 사회의 탄생과 ‘소사이어티 게임’으로 그린 사회 간의 경쟁을 넘어 사회의 완성을 보는 듯하다.

단지 이번 시리즈의 초입에 불거졌던 각종 논란은 제작진이 숙고해야 하는 부분이다. 1년 여 이상 차이가 나는 과거 시리즈와의 연속성 때문에 그 연속성을 몰입해 공부했던 시청자와 달리 출연자들은 그만큼의 성의를 보이지 못했다. 이는 내러티브의 흐름을 방해하고, 결국 멤버들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추리보다는 설명이 많은 회차가 됐다. 세계관에 몰입한 시청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관에 열광하는 시청자가 그렇게 많을 정도로 이러한 형식은 지금 예능의 대세가 됐다.

잘 짜인 이야기, 이 배경이 되는 세계관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시대가 됐다. ‘대탈출’의 세계 ‘DTCU’는 앞으로 이러한 화두를 가지고 달려갈 예정이다. 세계관은 구성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설득도 중요하다. 이는 단지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뛰어드는 출연자들에게도 충분히 이해하고 가야할 요소이기도 하다. 결국 탈출과 하나의 사회를 엮어놓은 정종연PD의 도전은 다시 시험대 위에 섰다. 우리는 그의 진화하는 세계를 보면서 감탄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흥미를 잃게 될 것인가. 출범 3년을 넘긴 ‘대탈출’은 정말 기존 예능에서의 ‘탈출’ 여부를 놓고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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