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해도 저녁은 없었다…월급 쪼그라든 中企직원, 투잡 내몰린다

머니투데이 남동산단(인천)=이재윤 기자, 지영호 기자 2021.07.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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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등떠밀려 52시간 막차 탄 中企

편집자주 근로자의 80%가 일하고 기업의 90%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도 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제 대상이 됐다. 중소기업계는 당장 인력난이 시급하다고 아우성이다.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업무효율성이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근로자들도 '저녁있는 삶' 대신 '소득없는 삶'에 직면하게 됐다고 한숨이다. 도입 4년차에 들어선 주 52시간, 맷집 약한 중소기업도 연착륙할 수 있을까.

'주52시간제' 손발 묶인 中企…"현장서 일 안하는 사장 없어요"
인천 남동공단 도금단지 르포

인천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도금업체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이재윤 기자인천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도금업체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이재윤 기자


"X고생만 하고 돈도 못벌어 가는데 누가 합니까.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죠. 그래도 먹고 살아야하니 어쩔 수 없이 근로자들 다 내보내고 몇 명만 데리고 하는거죠. 요새 뿌리산업 사장들 중에 현장에서 일 안하는 사장 없어요."(윤봉호 인천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일진도금단지 대표·오성금속 대표)



주52시간 근로제가 확대 적용된 1일. 인천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이하 남동산단)에서도 대표적인 뿌리산업인 도금업체 28곳이 밀집해 있는 일진도금단지는 주52시간제 도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과거 50곳에 달했던 도금 업체들은 노동규제와 인력수급,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규모가 절반가량 쪼그라들었다.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등 전자부품과 생활필수품 등을 공급하는 일진도금단지 사업주들은 "회사 운영이 녹록치 않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시 근로자가 7~10명 정도로 이번 주52시간제 확대 적용으로 직격탄을 맞은 사업체들이다. 주52시간제는 2018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확대돼 이날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됐다.



인천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도금업체에서 작업 중인 모습./사진=이재윤 기자인천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도금업체에서 작업 중인 모습./사진=이재윤 기자
이날 만난 사업주들은 주52시간 시행에 맞춰 긴축경영을 해 왔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도금단지 내에는 간판이 떨어져나간 공실 건물이 많았다. 공장 안쪽으로 들여다보면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먼지 쌓인 기계들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 입주했던 도금업체들은 대부분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등으로부터 3~4차 하청을 받는 업체였다는 게 공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납품단가를 높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52시간제 도입에 따른 추가 인력이나 관리 비용을 부담할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줄어드는 노동자들을 충원하지 않아 대체·탄력근로 확대라는 주52시간제 도입 취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현장에선 정부의 주52시간제 확대가 뿌리산업 현실을 파악하지 않은 채 강행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30년째 도금업에서 종사했다는 윤 대표는 "단가를 높이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말이 안된다. 한 사람 인건비라도 줄이려고 사장이 뛴다"며 "주52시간제 취지와는 완전 반대로 가고있다. 추가로 고용하면 4대 보험도 배로 들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규모를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 맞다"고 토로했다.

인천 남동공단 일진도금단지 전경./사진=이재윤 기자인천 남동공단 일진도금단지 전경./사진=이재윤 기자
특히 주52시간제는 최저임금과 외국인 근로자 수급부족 등으로 '고용 3중고'를 겪고있는 중소기업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불규칙한 납품요구에 맞추려면 상황에 따라 평일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해야하지만, 주52시간제로 손발이 묶여 버리기 때문이다. 소위 3D(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업종으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코로나19(COVID-19) 영향으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막혀 일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빠르게 오르면서 비용부담이 커졌다.

일부 인건비를 반영해 단가를 높인 업체가 나타나자 발주하는 중간업체들은 한국 회사 대신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공급을 맡기고 있다. 도금업체 A대표는 "가격을 높이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가격을 유지하자니 인건비가 안나온다"며 "사람을 더 뽑는 것 보다 일을 안받는게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남동공단에서 15명 규모 전기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B 대표도 "무조건 법으로 정한다고 따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사업을 접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수시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 확대시 지원금을 주는 정부 대책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라며 "잠깐 데리고 있을 사람 뽑아 쓰고 버리라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52시간제에 반토막 난 월급…中企 근로자들 "알바 뜁니다"
월급 줄어든 근로자들도 '불만'

인천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 전경./사진=뉴스1인천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 전경./사진=뉴스1
주52시간 근로제가 확대되면서 중소기업을 지탱하던 노동자들도 타격을 입었다. 추가·특별근무 등 추가수당으로 버티던 급여체계가 무너지고 임금수준을 맞춰기 어려워져서다. 특히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기술 노하우가 집약된 숙련공 조차 최저임금을 받는 수준으로 추락해 산업 경쟁력을 악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주52시간제가 확대에 따른 부작용은 사업주뿐만 아니라 뿌리산업 노동자들에게까지 미쳤다. 이달부터 5인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면서 특히 내국인(한국) 근로자의 급여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자본이나 기술보다 노동력에 의존하는 중소·영세 사업장은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생산동력이다. 노동시간이 감소하면 생산력이 떨어지고, 때문에 임금도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행 50인 미만 사업장의 주당 법정 근로시간은 기존 68시간(평일 40시간+평일 연장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16시간이 줄어들었다.

근로자들은 당장 체감은 못한다면서도 혹여나 급여가 줄어들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도금업계에 따르면 일반 근로자에 대해 월 300만원, 숙련공에 대해 500만~600만원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8인 규모 도금업체에서 근무하는 A씨는 "지금까진 고생해도 일하면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며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줄어든 근로시간 만큼 숙련공이나 주요 산업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15인 규모 표면근속처리 업체 근로자 B씨는 "근무여건이나 급여수준만 따지면 옮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반문하며 "숙련공이 되고 나아가 사업체를 차릴 수 있는 기술까지 익히게 되는데 10년 이상은 걸리는데, 이 기간이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단기간 납기일을 맞춰야 하는 산업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10년 만에 업황이 나아지고 있는 조선업은 야외에서 진행되는 작업이 많아 날씨가 맑은 단기간에 작업시간을 늘려 공급해야 한다. 조선업 현장에선 노동자들이 줄어든 급여를 보존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역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단 설명이다. 줄어든 급여를 보전하기 위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으로의 이직도 적극적이다. 그러다보니 인력유출이 심한 중소기업에선 숙련공 품귀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분석한 올해 5월 고용노동부 5~49인 기업 노동시간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자료=중소벤처기업연구원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분석한 올해 5월 고용노동부 5~49인 기업 노동시간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자료=중소벤처기업연구원
최금식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52시간은 조선산업계에) 자살골 같은 결정"이라며 "시급을 올려줘도 근로시간 감소로 전체 급여가 줄어든 노동자들이 속속 회사를 그만두고 있다. 20%가량의 이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숙련공에 의존하고 있는 중소업체들은 주52시간제 도입과 근로구조 개선을 동시에 감당할 구조적 여건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고 이른바 3D업종(힘들고, 더럽고, 위험한)으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젊은 층 양성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교육이 어려울뿐만 아니라 최근 코로나19(COVID-19)로 유입이 줄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주52시간제가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겐 독이 될 수 있다"며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여 워라밸(일·생활의 균형)을 실현하자는 당초 취지는 퇴색되고 가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은 주52시간 버텼지만…'체급 다른' 中企는 어쩌나
52시간해도 저녁은 없었다…월급 쪼그라든 中企직원, 투잡 내몰린다
1일부터 시행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주52시간제에 대해 중소기업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의 뿌리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 붕괴되면 우리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만큼 적절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평가다.

◇대기업은 버텼지만 中企는 허약

1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COVID-19) 영향 등으로 중소기업의 체력은 급격하게 약화돼 있다. 대표적인 지표는 대중소기업 생산지수 증가율이다. 이미 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기업은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지난해 2분기에만 마이너스를 보였을 뿐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모두 전년동기 대비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올해 1분기 서비스 부문에만 생산지수가 전년동기 대비 0.2% 증가했을 뿐, 5분기동안 계속 마이너스다.

4년간 34.8%의 최저임금 인상률 여파도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지난해 15.6%를 기록, 역대 두번째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최저임금 조차 받지못한 근로자 319만명 중 97.3%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높아져야 현상이 유지되지만 현실은 먼나라 이야기다.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26.6%에 그친다. 인건비는 더 들어가는데 생산성은 따라오지 못한단 의미다.

외국인노동자외국인노동자
◇외국인 근로자 유입 끊겨...인력난 가중

인력 미스매치는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다. 중소기업 일자리 부족분은 21만명으로, 전 산업에서 87%를 차지한다. 중소기업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수는 대기업이 전년 대비 7만9000명 늘어나는동안 중소기업은 29만7000명 감소했다. 대기업에 이익이 몰리면서 대·중소기업간 임금·복지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특히 소재를 부품으로 주조, 금형, 용접 등을 통해 제조하는 뿌리산업은 청년 근로자가 없어 외국 인력을 활용해야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사실상 공급이 끊긴 상태다. 정부가 입국을 허용하는 제조업 외국인 근로자는 4만명이지만 4월까지 입국인원은 1806명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뿌리산업은 3D 업종이란 인식이 강해 젊은 인력을 구하기 거의 불가능하고, 어쩌다 청년 근로자가 취업을 해다 하루만에 퇴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때문에 정년이 지난 60대 근로자들만 고용해서 근근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뿌리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뿌리산업 종사자는 51만7000명으로 전년대비 3만8000명이 감소했다. 이중 60대 이상만 7% 증가했을 뿐, 나머지 연령대는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돈으로는 한계...유연근무 확대 등 제도보완 필요

현재 정부는 52시간제 정착을 위한 방안으로 보조금 지급 정책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자리 함께하기 제도가 있다. 52시간을 준수하면서 근로자를 신규채용하면 늘어난 근로자 1명당 월 최대 80만원을 지원한다. 지원기간은 2년이다. 하지만 직원 50명 한도 내에서 1인당 120만원을 지원하는 노동시간단축 정착지원금은 지난달 30일자로 마감됐다. 선제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에 대응한다는 조건이 붙은 까닭이다.

중소기업계는 근로시간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을 현행 연 90일에서 180일로 확대하고, 3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내년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도를 50인 미만으로 늘려달라는 것이다. 또 한주간 12시간의 연장근로 허용을 노사 합의시 연·월 단위 연장근로제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노사합의를 기반으로 연장근로한도를 월 45시간, 연 360시간, 업무량 증가 등의 사유가 있는경우 최대 월 100시간, 연 740시간까지 허용하고 있다.

아울러 3개월 이내 적용하는 탄력근로제의 경우 매일 수립해야 하는 근로계획을 기간에 상관없이 사전에 월별 계획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도 당장 고용절벽에 내몰리는 중소기업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선 유연하게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성수기때는 바짝 일하고 비수기 때는 쉴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하게 근로시간을 조정해 줄 필요가 있다"며 "대·중소기업간에는 전속거래를 풀어주고 장기적으로 상생협력이 이뤄질 수 있는 제도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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