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퍼런 검사? 동네 계모임 싸움 말리다가 짬나면 '당근' 거래"

뉴스1 제공 2021.04.1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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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 평검사 첫 에세이집 펴낸 박민희·서아람 검사
"실제 모습은 사건 상담 공무원…경험하고 성장, 똑같은 사람"

검사이자 여자이고 엄마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이야기가 담긴 '여자 사람 검사'의 저자 인 현직 9년 차 검사 서아람(왼쪽),박민희 검사가 8일 서울 서초동에서 뉴스1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4.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검사이자 여자이고 엄마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이야기가 담긴 '여자 사람 검사'의 저자 인 현직 9년 차 검사 서아람(왼쪽),박민희 검사가 8일 서울 서초동에서 뉴스1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4.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 "'여사친·남사친'이라는 단어처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여자 사람 검사'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평검사 3명이 모였다. 엄마이자 여성으로서, 또 검사로서의 경험을 담은 책을 냈다. 수원지검 서아람 검사(35)와 수원지검 안양지청 박민희 검사(35), 김은수 검사(36·필명)가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검사 출신이거나 현직 검사가 쓴 책은 많았다. 그러나 현직 여성 평검사가 출판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겁고 어려운 담론을 다룬 책은 아니다. 초임 때 선배들의 점심 메뉴를 정하던 '밥총무' 경험부터 흔한 직장인들이 겪는 결재 반려 스트레스까지 담담한 일상의 기록이다.



책을 낸 계기도 거창하지 않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거나 "인생의 버킷리스트"라는 이유에서 출발했다. 그렇게 육아휴직 기간 동안 시간을 쪼개 글을 써 내려가 '여자 사람 검사' 책이 나왔다.

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박 검사와 서 검사를 만났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집필을 마치고 지난 2월 이제 막 업무에 복귀했지만, 이들의 얼굴에선 생기가 넘쳤다.

◇현실 속 검사는 이야기 들어주는 '상담 공무원'


'여자 사람 검사'에 나오는 검사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검사의 모습과는 다르다. 몸싸움 끝에 멋있게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유명 대기업 회장을 취조하는 검사와 같이 '극히 일부'와는 다른 평범한 검사들이다.

"보통의 검사들은 대부분 몇천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쌓아놓고 하루종일 눈이 빠지게 읽는 게 주 업무에요. 사건이라고 해도 대부분 동네 계모임에서 일어난 싸움 말리는 일 같은 아주 사소하고 민생에 가까운 일이 많아요."

부임 이후 줄곧 형사·공판부를 담당했던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들어주기'다. 그 과정에서 별의별 상황도 벌어진다. 20만원을 주면서 없었던 일로 해달라는 할아버지부터 불만에 가득 차 검사실에 대변을 봤던 사람까지 다양하다.

서 검사는 "어떻게 보면 민원을 상담해주는 공무원과도 비슷한 직업"이라고 했다. 사건관계인들을 한명 한명 만나 얘기를 듣고, 만나지 못하면 전화로 일일이 얘기를 들어주는 게 주 업무라는 이유에서다.

책을 보면 검사들은 항상 으리으리한 식당에서 좋은 식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산산이 깨진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에 끈적거리지도 않고 부스러기도 남지 않는 강냉이를 달고 살고, 가끔 모여 떡볶이라도 먹는 날이 일종의 소소한 회식이다.

현실 검사의 일상은 치열하다. 난임으로 매일 새벽 5시마다 과배란 주사를 맞고 출근했던 김 검사는 출산 직전까지 일을 하려다가 동료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향했다. 서 검사는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난 소개팅 도중에 지명수배된 피의자가 체포되는 바람에 급히 나와야 했다.

서 검사는 그래도 그 안에 인간미가 있다고 말한다. "저희 일이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하고 신나고 드라마틱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힘든 부분이 많지만, 일 자체로 매력적인 부분도 있어요. 충분히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있고요."

검사이자 여자이고 엄마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이야기가 담긴 '여자 사람 검사'의 저자 인 현직 9년 차 검사 서아람(왼쪽),박민희 검사가 8일 서울 서초동에서 뉴스1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4.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검사이자 여자이고 엄마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이야기가 담긴 '여자 사람 검사'의 저자 인 현직 9년 차 검사 서아람(왼쪽),박민희 검사가 8일 서울 서초동에서 뉴스1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4.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검사도 '당근' 한답니다…"똑같이 경험하고 성장하는 사람"

"일 끝나면 애기보러 가고, 주말엔 당근(마켓) 거래하러 다니고…."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는 일을 하지만, 결국 검사들도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느 직장인처럼 부장님의 결재 반려에 머리를 감싸기도 하고 중고거래에 빠져 점심시간 등 시간이 날 때마다 휴대전화로 중고거래 사이트를 탐닉하기도 한다.

박 검사는 중고 카시트를 구매하려다 사기를 당할 뻔했다. 교회 부목사라는 말만 믿고 송금을 하려던 차에 멈췄다. 판매자 이름을 검색해 본 남편이 제지해준 덕에 사기당할 위험을 넘겼다.

극악한 사건을 보면 일반 사람들처럼 감정도 요동친다. 갓 태어난 아이를 골목길에 유기해 숨지게 한 사건을 맡은 김 검사는 피의자 조사 전에 화가 치밀어 오른 마음을 먼저 가다듬어야 했다. 조사 도중 아이 성별을 묻는 피의자의 질문에는 이유 모를 눈물이 수없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서 검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김밥을 짓뭉개고 볶음밥을 던져버린 아이의 뒤통수를 자신도 모르게 때린 경험을 하고 난 뒤, 수년 전 처리했던 아동학대 사건을 되돌아봤다.

서 검사는 "보육교사 사건의 경우 경험이 부족해서 사건 처리 기준대로 처리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심정이나 보육교사의 심정을 더 이해하고 처리를 했을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검사도 대다수의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경험하며 성장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목적의식이 있던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저희가 말하고자 했던 건 검사들도 똑같이 경험하고 느끼고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것 같아요."

◇육아휴직 중 만나 의기투합…"우리의 이야기를 써보자"

변호사시험 2기 동기인 세 검사는 육아휴직을 계기로 만났다. 박 검사가 육아코칭 프로그램에 나온 서 검사를 보고 연락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3명의 동기가 모여 모바일 메신저 단체대화방을 만들었다.

책을 쓰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던 박 검사가 먼저 "우리의 이야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미 소설을 써서 출판까지 한 경험이 있던 서 검사는 곧바로 동의를 했고 김 검사까지 합류했다.

당차게 시작했지만, 출판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서 검사는 "매 순간이 위기였다"고 말했다. 내부에 책을 쓰겠다고 신고하는 절차부터 두려움이 앞섰고, 실제 처리했던 사건은 어디까지 언급해야 할지 등 검토해야 할 것도 많았다.

박 검사는 필명을 쓸 것인지 실명을 쓸 것인지를 두고 가장 큰 고민을 했다. 그는 "매 순간마다 이름이 공표됐을 때의 반응이 너무 걱정되고 상처 입을 우리도 걱정됐어요. 그럼에도 뜻깊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매 순간 다잡고 쓴 책"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걸고 쓴 이유는 실명이 주는 힘 때문이었다. 박 검사는 "실화를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실성을 담기 위해 많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실명을 썼다"고 털어놨다.

책 출판 이후 주변에선 응원이 쏟아졌다고 한다. 한 여 선배는 "남편도 모르는 내 마음을 너희가 알아줬다"며 쪽지를 보냈다. 한 간부는 "눈물이 절절 났다"고 전해왔다.

걱정이 많았던 박 검사는 "주변에서 많은 응원과 지지를 해줘서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다"며 "책을 쓴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했다고 격려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 검사는 책을 쓴 이후 일에 더 열정을 갖게 됐다고 했다. "책을 보는 사람들은 저를 통해 검사 이미지를 보게 되는 거잖아요. 그 생각을 하면 항상 더 공정하고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해요. 앞으로도 많이 경험하고 공부해서 시즌2도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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